WL Archive
WQ214

인간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생명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

인간은 생명체를 음식과 약, 노동, 연구, 경관의 자원으로 이용하며 보호의 이유도 인간의 건강과 미래 이익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생명은 인간에게 쓸모가 없어도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생태적 관계를 구성한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인간의 필요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면서도 모든 생명의 가치를 인간에게 주는 편익으로만 판단하면 알려지지 않은 종과 불편한 생명, 먼 미래의 생태계가 쉽게 희생되기 때문이다. 가치의 근거를 감각과 고통, 생명 자체, 생태계의 관계 중 어디에 둘지도 논쟁적이다. 보호 가치는 개별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 종의 희귀성과 진화적 독특성, 생태계 안의 역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을 같은 방식으로 보호할 수 없고 인간의 생존과 질병 통제, 농업이 다른 생명의 손실을 만든다. 침입종과 병원체, 해충처럼 인간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생명을 어떻게 다룰지도 어렵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일부 개체를 제거하는 경우에는 개체와 전체의 가치가 충돌한다. 무엇을 생명으로 보고 도덕적 고려의 범위에 넣을지도 과학과 철학의 질문이다. 멸종 위기 곤충은 사람에게 매력적이지 않아도 수분과 생태계의 다양성에 기여하며 그 이상으로 존재 가치를 주장할 수 있다. 오래된 숲과 습지는 개발 이익이 없어도 수많은 생명의 서식지이자 고유한 체계다. 실험동물과 축산동물, 반려동물은 인간과의 관계와 고통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보호를 받는다. 농작물을 해치는 동물, 감염병을 옮기는 모기, 외래종을 통제하는 일은 인간과 생태계의 필요를 함께 묻게 한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모든 생명 이용을 금지하거나 인간의 필요를 언제나 우선하는 데 있지 않다. 생명 사이의 충돌과 제한된 자원 속에서 피해를 줄이고 정당화할 책임이 남는다. 질문의 핵심은 인간에게 유용한 종의 목록을 넓히는 데 있지 않다. 인간 중심의 가치가 보지 못하는 생명의 고유성과 상호의존을 이해하고,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묻는 데 있다.

1. 자이나교 전통 - 모든 생명에 대한 비폭력

#### *Āyāraṃga Sutta* (아차랑가 수트라)
자이나교는 인간과 동물뿐 아니라 식물과 미세한 생명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 보고, 아힘사 곧 비폭력을 가장 중심적인 계율로 둔다. 다른 생명도 살고자 하며 고통과 손상을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유용성은 보호 가치의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
저작과 위치: 제1권의 생명과 비폭력에 관한 가르침. 땅·물·불·바람과 식물에 깃든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고 권하는 대목이다.
#### 중심 생각
자이나교의 아힘사는 일상에서 어떤 생명도 전혀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생기는 손상을 인식하고, 욕망과 부주의에서 생기는 폭력을 줄이는 엄격한 수행이다. 의도, 필요, 주의와 절제가 함께 평가된다.
>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살기를 바라며 고통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구도 죽임당하거나 괴롭힘당하거나 쫓겨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명을 알고 보는 사람은 어떤 살아 있는 존재도 해치거나 지배하거나 노예로 삼지 않는다.*
원문 보기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알베르트 슈바이처 - 살고자 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

#### *Kultur und Ethik* (문명과 윤리)
슈바이처는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른 생명에서도 발견하며 윤리의 범위를 모든 생명으로 넓혔다. 생명을 보존하고 돕는 일을 선으로, 생명을 훼손하고 억압하는 일을 악으로 표현했다. 가치의 근거는 인간에게 유용한가보다 생명 자체의 의지에 놓인다.
저작과 위치: ‘생명에 대한 경외’의 윤리를 정식화하는 후반부다.
#### 중심 생각
생명에 대한 경외는 모든 생명 사이의 충돌을 없애는 계산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먹고 공간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슈바이처는 이 불가피성을 면죄부로 삼지 않고, 생명을 해칠 때마다 그 필요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가능한 손상을 줄이는 책임을 강조한다.
>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이며, 살고자 하는 생명들 한가운데 존재한다. 생명을 보존하고 촉진하는 것은 선이고, 생명을 파괴하고 억누르는 것은 악이다.*
원문 보기

↑ 질문으로 돌아가기

3. 올도 리오폴드 -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 *A Sand County Almanac and Sketches Here and There* (모래 군의 열두 달)
리오폴드는 윤리의 공동체를 토양, 물, 식물, 동물까지 포함하는 ‘대지’로 확장했다. 인간은 생태계를 정복하는 지배자보다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개별 생명이 인간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아직 모르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관계와 지속성 속에서 가치를 가진다.
저작과 위치: 마지막 장 〈대지 윤리〉. 인간과 토지의 관계, 생명공동체의 온전함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 중심 생각
대지 윤리는 개별 동물의 고통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종, 서식지, 물질순환과 먹이망 같은 생태적 전체를 본다. 이 때문에 침입종 제거처럼 일부 개체의 생명과 생태계 전체의 보전이 충돌할 수 있다. ‘안정성과 아름다움’도 단순한 수치가 아니므로 과학적 정보와 윤리적 숙고가 함께 필요하다.
> *대지 윤리는 공동체의 경계를 토양, 물, 식물과 동물, 곧 대지를 포함하도록 넓힌다. 인간의 역할은 정복자에서 생명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바뀐다.*
원문 보기

↑ 질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