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이 높아진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일을 자동화해도 되는가?
자동화는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줄이고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며 사람이 더 복잡한 활동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효율이 높다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기계에 맡기면 일자리와 숙련, 인간적 접촉, 책임의 위치가 달라진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효율이 중요한 가치이지만 서비스의 목적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자동화의 이익과 비용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배분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사회적으로 원하는 것이 같지 않으며, 자동화하지 않을 때의 비용도 존재한다. 판단할 때에는 오류의 결과와 되돌릴 가능성, 인간의 재량이 필요한 정도, 이용자의 선택과 접근성을 살펴야 한다. 기계는 일정한 기준을 빠르게 적용하지만 데이터의 편견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취약할 수 있다. 인간의 판단도 편견과 피로가 있으므로 자동화와 인간 결정을 단순히 대립시키기 어렵다.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고 최종 판단과 이의 절차를 사람이 맡는 방식도 있다. 자동화된 시스템을 이해하고 멈출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노동자의 기술과 지식이 어떻게 보존되는지도 중요하다. 공장의 위험한 공정을 자동화하면 노동재해를 줄일 수 있지만 노동자의 일자리와 지역 경제가 영향을 받는다. 병원의 진단 보조는 많은 영상을 분석하지만 환자의 맥락과 설명 책임은 남는다. 복지와 채용의 자동 심사는 속도를 높이면서 오류와 차별을 대규모로 만들 수 있다. 무인점포와 고객상담은 비용을 줄이지만 노인과 장애인,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사람을 배제할 수 있다. 돌봄 로봇과 교육 기술은 지원을 넓히는 동시에 관계의 질과 개인정보 문제를 만든다. 모든 일을 자동화해도 되는가라는 물음은 기술을 거부하거나 효율을 우선하는 두 선택에 있지 않다. 자동화가 위험과 반복을 줄이는지, 사람의 판단과 관계를 제거해 새로운 위험을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질문의 핵심은 인간만이 해야 할 일의 고정된 목록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업무의 목적과 영향을 받는 사람의 권리, 실패 시 책임과 수정 가능성, 전환의 비용을 고려해 어떤 역할을 기술과 사람이 나눌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아리스토텔레스 - 자동화가 드러내는 노동의 목적
#### *Politika*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도구가 명령을 알아서 수행할 수 있다면 장인에게 조수가, 주인에게 노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이 대목은 자동화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할 가능성을 매우 이른 시기에 보여 준다. 동시에 그의 논의는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체계 안에 놓여 있어, 현대 독자는 인간을 도구로 분류한 전제를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저작과 위치: 제1권 제4장. 도구와 생산, 노예노동의 관계를 논하는 대목이다.
#### 중심 생각
자동화의 의미는 기계가 일을 대신한다는 사실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 결과 누가 고된 일을 덜고 자유시간을 얻는지, 누가 생계와 사회적 역할을 잃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적 삶을 위해 여가를 중시했다는 점을 가져오되, 그 여가를 일부 자유민에게만 허용했던 정치적 한계도 함께 보아야 한다.
> *모든 도구가 명령을 받거나 스스로 필요를 알아차려 제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베틀의 북이 저절로 움직이고 수금의 채가 스스로 연주할 수 있다면, 장인에게는 조수가 필요 없고 주인에게는 노예가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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