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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186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은 구성원의 존엄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조직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고 자원을 유지하기 위해 성과를 요구한다. 목표와 평가는 책임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사람을 생산량과 순위로만 판단하면 몸과 감정, 권리가 비용 항목으로 밀려난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존엄이 성과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조직의 보상과 생존은 성과 차이를 반영해야 하고, 무엇이 정당한 요구인지 업무와 권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과 압박은 개인의 동기와 조직 구조를 동시에 바꾼다. 존엄의 보장은 안전한 노동조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 휴식, 의견 제기와 공정한 절차를 포함한다. 낮은 성과를 지적하고 역할을 조정하는 일 자체가 존엄 침해는 아니지만 공개적 모욕, 불명확한 기준, 회복 불가능한 낙인은 사람 전체를 평가 대상으로 만든다. 목표를 누가 정하고 자원과 권한이 충분히 제공되었는지, 성과의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도 중요하다. 고객과 시민의 필요를 위해 높은 기준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도 실수 보고가 처벌만으로 이어지면 안전 정보가 숨겨질 수 있다. 병원은 진료량과 비용을 관리해야 하지만 의료진의 과로와 환자 한 명에게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판매 조직의 실적 순위는 동기를 주면서 동료 간 협력과 고객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학교가 시험 성과만으로 교사와 학생을 평가하거나, 물류센터가 속도 지표 때문에 노동자의 화장실과 휴식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비영리단체와 종교기관은 사명감을 이유로 무급 노동과 감정적 헌신을 요구할 수 있으며, 장애와 돌봄 책임이 있는 직원은 표준화된 성과 기준에서 불리할 수 있다.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성과 평가를 없애거나 모든 구성원을 같은 방식으로 보상하는 데 있지 않다.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권리는 함께 존재하며, 실패의 원인이 능력·자원·설계 중 어디에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 질문의 핵심은 친절한 관리 기법을 찾는 데 있지 않다. 구성원을 교체 가능한 수단으로만 다루지 않으면서 기대와 책임을 명확히 하고, 평가받는 사람도 기준에 참여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회복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임마누엘 칸트 - 구성원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한다

####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윤리형이상학 정초)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에 관해 지고의 실천 원칙 또는 정언명령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인 까닭에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목적이 되는 것의 개념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의지의 객관적 원칙을 이루고 보편적인 실천 법칙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의 기초는 이성적 본성이 그 자체로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 존재를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그 점에서는 이것이 인간 행위의 주관적 원칙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도 내게 타당한 바로 그 이성적 원칙에 따라 자기 존재를 같은 방식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것은 동시에 객관적 원칙이며, 지고의 실천 법칙으로서 모든 의지의 법칙은 거기서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실천 명령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네 자신의 인격에서든 다른 누구의 인격에서든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 이제 이것이 실천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임마누엘 칸트,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제2절, Akademie 4:428–429의 “If then there is a supreme practical principle” 문단 전체, Thomas Kingsmill Abbott 영어 번역; 이 문단에 달린 칸트의 별도 각주는 인용 범위에 포함하지 않음;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www.gutenberg.org/files/5682/5682-h/5682-h.htm).

목적의 왕국에서 모든 것은 가격 또는 존엄을 갖는다. 가격을 갖는 것은 동등한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반면 모든 가격을 넘어 있어서 동등한 대체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존엄을 갖는다. >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과 욕구에 관련되는 것은 시장가격을 갖는다. 욕구를 전제하지 않으면서 어떤 취향, 곧 우리 능력이 목적 없이 활동하는 데서 생기는 만족에 맞는 것은 애호가격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조건을 이루는 것은 단지 상대적인 가치인 가격만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가치, 곧 존엄을 갖는다.

같은 책, 제2절, Akademie 4:434–435의 “In the kingdom of ends”와 “Whatever has reference” 두 문단 전체, Thomas Kingsmill Abbott 영어 번역;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www.gutenberg.org/files/5682/5682-h/5682-h.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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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인간성 정식은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요구한다. 서로의 능력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협력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단지 수단으로만 처리하는 일을 금한다. 조직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는 구성원의 판단과 목적, 동의할 가능성을 함께 존중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존엄은 같은 가격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다만 이 원칙만으로 구체적인 근로조건과 권리 목록이 모두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실제 제도와 협상 조건을 따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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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목표와 기한을 정하고 성과가 부족한 구성원에게 피드백과 역할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한 뒤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거나, 감시와 공개 순위로 수치심을 유발하며, 위험과 부작용을 숨긴 채 동의를 받는다면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 대한다. 의료·돌봄·교육 조직에서 처리 건수만 높이면 이용자의 필요와 전문직의 판단이 사라질 수 있고, 플랫폼 노동에서는 알고리즘이 업무를 배정하면서 이유와 이의제기 통로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해고와 평가가 필요한 경우에도 기준을 사전에 알리고 근거를 설명하며 당사자의 의견과 재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구성원이 목표 설정에 참여하고 필요한 자원과 휴식을 요구할 수 있어야 동의가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공지능 평가와 생산성 분석도 같은 질문을 낳는다. 어떤 자료가 수집되고 점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 수 없거나, 기계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면 구성원은 측정 대상이 될 뿐 판단의 주체로 대우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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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은 구성원을 목표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목표와 평가기준, 자료 사용과 예상되는 위험을 공개하고, 수행에 필요한 시간·교육·장비와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의 건강과 사생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휴식과 거부 가능성은 단기 성과와 교환되는 비용 항목으로만 다룰 수 없다. 성과가 부족할 때에는 사람 전체를 낙인찍기보다 역할·자원·기대와 행동을 구분해 평가하고 수정과 이의제기 절차를 둔다. 칸트의 관점에서 존엄 보장은 친절한 조직문화를 넘어 구성원이 공동 규칙의 수신자이자 제정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를 뜻한다. 높은 성과를 내더라도 기만과 강제로 사람의 자율성을 빼앗았다면 정당한 조직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존엄을 보호하는 최소선에는 안전뿐 아니라 개인정보와 공정한 보상, 차별받지 않을 조건도 포함된다. 이 기준은 성과가 좋을 때 주는 보상이 아니라 조직이 목표를 요구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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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를 마르크스 - 노동자가 자신의 활동과 결과에서 소외되지 않게 한다

####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

그러면 노동의 외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 첫째, 노동이 노동자에게 외적인 것이라는 데, 곧 그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노동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편안하게 느끼지 않고 불행하게 느끼고, 자유로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괴롭히며 정신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동 밖에서야 자신에게 속한다고 느끼고 노동 속에서는 자신을 벗어나 있다고 느낀다. 일하지 않을 때에는 집에 있는 것이고 일할 때에는 집에 있지 않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 강제노동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노동 밖의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노동의 낯섦은 신체적이거나 다른 강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노동을 전염병처럼 피한다는 데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외적인 노동, 사람이 자신을 외화하는 노동은 자기희생과 고행의 노동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이 외적이라는 것은 노동자에게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며,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속한다는 데서 드러난다. 종교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두뇌와 마음의 자발적 활동이 개인과 독립하여, 곧 낯선 신적이거나 악마적인 활동으로서 개인에게 작용하듯이, 노동자의 활동도 자신의 자발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속하며 자기 자신의 상실이다.

카를 마르크스,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제1수고 「Die entfremdete Arbeit」, Marx/Engels Werke 보충권 제1부 514쪽, “Worin besteht nun”의 질문과 바로 이어지는 “Erstens” 문단 전체; 공개 발췌 PDF 7쪽; 독일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독일어 본문](https://warwick.ac.uk/fac/arts/modernlanguages/applying/undergraduate/germanmodules/ge211ps/marx_konomisch-phil._manuskripte_mew_40_extracts.pdf).

1
마르크스는 노동이 노동자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펼치는 활동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외적인 활동이 되는 소외를 설명한다. 노동의 결과뿐 아니라 노동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다. 조직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는 노동자가 작업 방식과 결과의 사용에 관해 어떤 판단과 통제권을 갖는지 살피는 데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 문단이 현대의 모든 조직을 같은 정도로 소외되었다고 판정하거나 한 가지 참여 제도로 소외가 전부 사라진다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노동조건과 권력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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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성과를 세분화해 각 구성원에게 숫자로 배정하면 전체 결과와 사회적 의미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상담사는 처리 건수를 맞추느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개발자는 자신이 만드는 기술이 감시와 차별에 사용되는지 알지 못하며, 물류노동자는 알고리즘의 속도에 맞추느라 몸의 리듬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업무의 목적과 결과,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알 권리와 발언권이 있고, 방법을 개선하며 동료와 협력할 여지가 있다면 같은 노동도 다른 경험이 된다. 참여라는 이름으로 의견만 받고 소유와 의사결정은 바꾸지 않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노동자가 위험과 속도, 품질기준과 기술 도입에 실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성과지표가 동료 간 경쟁을 강화해 정보 공유와 상호 돌봄을 손해로 만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외도 깊어진다. 개인별 순위를 팀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대신 공동 품질과 안전, 학습과 협력의 결과를 함께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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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을 보장하려면 적정 임금과 안전뿐 아니라 노동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이해와 통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조직은 성과의 목적과 사회적 영향을 공개하고, 구성원이 작업방식·속도·기술·품질기준에 참여하며 유해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개인의 기여가 공동의 결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이고, 협력의 성과를 소수의 소유자와 관리자에게만 귀속하지 않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좋은 복지제도만으로 소외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활동을 외부의 강제처럼 경험하지 않고, 결과와 의사결정에서 공동 주체가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과를 높이는 과정이 구성원의 판단과 관계를 빈곤하게 만든다면 생산성의 증가와 인간다운 노동은 분리될 수 있다.
노동과정에 대한 참여는 간담회 참석보다 강한 권한을 뜻한다. 작업을 중지할 권리, 기술 도입을 협의할 권리, 성과와 위험에 관한 자료를 열람할 권리가 실제로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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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오 13세 - 계약보다 앞서는 노동자의 생명과 인격을 보호한다

#### *Rerum novarum* (새로운 사태)

다음은 부유한 사람들과 고용주들에게 해당한다. 노동자를 노예의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대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게서 인격의 존엄, 특히 그리스도교적 품성으로 고귀해진 존엄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연적 이성과 그리스도교 철학의 말을 따른다면 돈을 버는 직업은 인간에게 수치가 아니라 명예다. 삶을 유지할 정직한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비인간적인 것은 이익을 위해 사람을 물건처럼 남용하고, 그들의 근육과 힘의 크기 이상으로는 그들을 평가하지 않는 일이다.

레오 13세, 회칙 『Rerum Novarum』(1891), 라틴어 본문 “Ista vero ad divites spectant ac dominos” 문단 전체; 바티칸 영어판 제20항의 사용자 의무 대목에 대응; 라틴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라틴어 본문](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la/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영어 번역 비교](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en/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일반적으로 노동자에게는 노동으로 소모한 힘에 상응하는 만큼의 여가를 주어야 한다. 사용하여 소모한 힘은 노동의 중단으로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서로 맺는 모든 의무에는 영혼과 몸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조건이 언제나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들어 있다. 다른 방식으로 합의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사람을 하느님이나 자기 자신에게 구속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회칙, 라틴어 본문 “Universe autem statuatur” 문단 전체; 바티칸 영어판 제42항 마지막 두 문단에 대응; 라틴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라틴어 본문](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la/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영어 번역 비교](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en/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그러므로 노동자와 고용주가 자유롭게 같은 합의, 특히 임금의 크기에 동의한다고 하자. 그래도 언제나 자연적 정의에서 나오는 어떤 요구가 그 아래에 있으며, 그것은 계약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지보다 더 크고 더 오래되었다. 곧 검소하고 품행이 바른 노동자를 부양하기에 임금이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다. 노동자가 필요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을 두려워하여, 원하지 않더라도 고용주나 노동의 도급자가 부과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더 가혹한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정의가 반대하는 강제를 겪는 것이다.

같은 회칙, 라틴어 본문 “Esto igitur”와 “Quod si necessitate opifex”의 두 문단 전체; 바티칸 영어판 제45항에 대응; 라틴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라틴어 본문](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la/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영어 번역 비교](https://www.vatican.va/content/leo-xiii/en/encyclicals/documents/hf_l-xiii_enc_15051891_rerum-novaru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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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3세는 노동자를 이익을 위한 물건처럼 취급하지 말고 인격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휴식과 생존을 위한 임금은 단순히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로 포기되는 요구가 아니다. 필요와 두려움 때문에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형식적인 동의와 실제 강제의 차이가 중요하다. 성과를 요구하는 질문에는 안전과 회복, 생활의 기반을 성과 목표와 함께 보호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 회칙은 그리스도교적 자연법과 당시의 가족·성별 관념을 전제하며, 오늘의 모든 구체적인 노동권 기준을 그대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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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이 계약서에 서명했더라도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환경, 모욕적 관리에 자유롭게 동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생계가 걸린 사람은 실제 대안이 부족하고,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는 명목상 독립적이어도 가격과 평가규칙을 정하지 못할 수 있다. 성과급이 소득을 높이면서 안전수칙 위반과 과잉노동을 유도하는지, 휴게시간이 기록에만 있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돌봄과 질병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지 살펴야 한다. 노동조합과 직업단체, 고충처리와 공적 감독은 힘의 차이를 조정하는 수단이 된다. 조직의 재정적 한계도 고려해야 하지만 생명과 기본생활을 성과 목표의 남는 몫으로 둘 수는 없다.
수습·단기계약·외주라는 형식이 위험한 업무와 불안정한 소득을 정당화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고용형태가 달라도 조직이 업무 방식과 시간을 실질적으로 통제한다면 그에 맞는 보호 책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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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요구할 수 있는 범위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생활 가능한 보상, 휴식과 가족생활, 결사의 자유와 양심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 안에서 정해져야 한다. 목표를 세울 때에는 필요한 인력과 시간, 위험을 함께 계산하고 성과 실패의 비용을 약한 구성원에게만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계약 내용뿐 아니라 실제 협상력과 거부 가능성, 현장에서 지켜지는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레오 13세의 관점에서 조직은 노동을 구매하지만 사람 전체를 소유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인격을 보호하는 기준은 선의의 복지혜택이 아니라 계약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조건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협상하고 외부 기관에 구제를 요청할 통로가 있어야 존엄이 성과보다 후순위로 밀리지 않는다.
보호 기준은 계약서에 적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 근무시간과 산업재해, 임금 체불과 괴롭힘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구성원이 보복 없이 구제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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