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권리는 무엇인가?
다수의 이익은 정책과 제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더 많은 사람의 안전과 행복을 높이는 선택은 공공의 책임과 연결된다. 그러나 다수에게 큰 편익이 생긴다는 이유로 소수의 생명, 자유, 존엄을 희생할 수 있다면 누구도 안정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권리가 손익 계산의 한계를 정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권리끼리 충돌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는 생명과 신체의 안전, 고문받지 않을 권리, 양심과 표현, 적법한 절차,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이 논의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안전과 존엄을 침해하거나, 감염병 대응이 이동과 사생활을 제한하는 상황에서는 권리의 범위가 쟁점이 된다. 권리를 절대적인 금지로 볼지 매우 높은 정당화 기준을 요구하는 보호선으로 볼지도 다르다. 제한의 필요성과 비례성, 기간, 대안, 부담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지, 이의를 제기할 절차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전염병 시기의 이동 제한과 정보 수집은 공중보건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사생활을 충돌시킨다. 테러 예방을 위한 감시는 다수의 안전을 내세우지만 특정 종교와 인종 집단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대형 개발사업은 많은 사람에게 전기와 교통을 제공하면서 지역 주민의 강제 이주와 문화적 권리를 훼손할 수 있다. 형사사법에서 신속한 처벌 요구는 무죄 추정과 적법절차를 압박하고, 의료 연구와 장기 배분에서는 생명과 동의의 권리가 효율성과 만난다. 무엇이 침해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은 권리의 목록만 작성하는 데 있지 않다. 권리는 가장 약한 위치의 사람도 다수의 선호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게 하는 공동의 약속이지만, 그 적용은 구체적인 사실과 제도 속에서 해석된다. 질문의 핵심은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 가운데 하나를 언제나 우선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가치를 계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지, 불가피한 제한이 있다면 누가 어떤 근거와 절차로 정당화해야 하는지, 희생의 부담이 공정하게 다루어지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임마누엘 칸트 - 사람을 다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없다
####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도덕형이상학 정초)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에 관해 지고의 실천 원칙 또는 정언명령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인 까닭에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목적이 되는 것의 개념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의지의 객관적 원칙을 이루고 보편적인 실천 법칙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의 기초는 이성적 본성이 그 자체로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 존재를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그 점에서는 이것이 인간 행위의 주관적 원칙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도 내게 타당한 바로 그 이성적 원칙에 따라 자기 존재를 같은 방식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것은 동시에 객관적 원칙이며, 지고의 실천 법칙으로서 모든 의지의 법칙은 거기서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실천 명령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네 자신의 인격에서든 다른 누구의 인격에서든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 이제 이것이 실천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임마누엘 칸트,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제2절, Akademie 4:428–429의 “If then there is a supreme practical principle” 문단 전체, Thomas Kingsmill Abbott 영어 번역; 이 문단에 달린 칸트의 별도 각주는 인용 범위에 포함하지 않음;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www.gutenberg.org/files/5682/5682-h/5682-h.htm).
목적의 왕국에서 모든 것은 가격 또는 존엄을 갖는다. 가격을 갖는 것은 동등한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반면 모든 가격을 넘어 있어서 동등한 대체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존엄을 갖는다. >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과 욕구에 관련되는 것은 시장가격을 갖는다. 욕구를 전제하지 않으면서 어떤 취향, 곧 우리 능력이 목적 없이 활동하는 데서 생기는 만족에 맞는 것은 애호가격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조건을 이루는 것은 단지 상대적인 가치인 가격만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가치, 곧 존엄을 갖는다.
같은 책, 제2절, Akademie 4:434–435의 “In the kingdom of ends”와 “Whatever has reference” 두 문단 전체, Thomas Kingsmill Abbott 영어 번역;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www.gutenberg.org/files/5682/5682-h/5682-h.htm).
1
칸트는 인간성을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이성적 본성으로 설명하며, 상대를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가격과 존엄의 구별에서는 동등한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드러낸다. 다수의 이익을 묻는 질문에는 한 사람을 편익 계산의 비용으로만 처리하는 일을 비판하는 근거로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 문단만으로 현대의 모든 기본권 목록이나 권리 제한의 법적 기준이 자동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구체적인 제도와 충돌 상황은 따로 검토해야 한다.
2
다수의 이익을 내세운 정책에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살펴야 한다. 감염병 대응은 공공 안전을 위해 이동을 제한할 수 있지만 과학적 근거와 최소침해, 기간, 생계 지원과 이의제기 절차가 필요하다. 범죄 예방을 위한 감시가 특정 집단을 영구적인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의료 연구가 충분한 설명과 동의 없이 취약한 사람에게 위험을 집중시키면 인격을 수단화한다. 개발사업이 전체 경제에 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주민의 집과 생계를 보상과 참여 없이 빼앗는 경우도 같다. 권리는 어떤 제한도 불가능하게 하는 표어는 아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생명과 동등한 자유를 침해할 때 공법적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한을 주장하는 쪽은 목적의 정당성, 실제 효과, 덜 침해적인 대안, 부담의 공정한 분배를 설명해야 한다.
3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도 개인을 고문하거나 노예화하고, 동의 없이 신체를 사용하며, 법적 인격과 양심을 부정하는 행위는 허용되기 어렵다.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 고문 금지, 강제노동 금지, 적법절차, 양심과 동의처럼 사람이 자기 목적을 세우는 존재로 남기 위한 권리는 강한 경계를 이룬다. 정책이 이 경계에 가까이 갈수록 단순한 편익 합계보다 당사자의 동의 가능성,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인지, 최소침해와 이의제기 절차가 있는지를 엄격히 물어야 한다. 칸트의 관점에서 권리는 다수의 목표를 방해하는 개인적 특혜가 아니라 각 사람을 공동 입법의 주체로 존중하기 위한 조건이다. 공공 안전을 위한 제한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상자를 위험한 물체처럼 다루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며 생활조건을 보장하고 종료와 심사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 사람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한다는 말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하게 둔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동등한 자율성과 함께 성립할 수 있는 규칙 아래에서 누구도 제거 가능한 비용 항목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에마뉘엘 레비나스 - 타자의 얼굴은 계산보다 먼저 책임을 요구한다
#### *Totalité et infini: Essai sur l’extériorité* (전체성과 무한)·*Autrement qu’être ou au-delà de l’essence* (존재와 다르게)·*Éthique et infini: Dialogues avec Philippe Nemo* (윤리와 무한)
나의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이전할 수 없으며,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Philippe Nemo와의 대화 「Ethics and Infinity」, Richard A. Cohen 영어 번역, Cross Currents 제34권 제2호(1984), 「Responsibility For The Other」 196쪽의 “My responsibility is untransferable” 문장;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www.scribd.com/document/715767083/Ethics-and-infinity).
1
레비나스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주체의 부수적인 속성보다 근본적인 구조로 설명한다. 194–196쪽에서는 타인의 얼굴이 나를 책임에 놓이게 하며, 그 책임은 내가 한 일의 결과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고 논한다. 동시에 극단적인 책임의 표현을 맥락에서 떼어서는 안 되며 실제 상황에서는 정의를 요구하는 다른 고려가 개입한다고 명시한다. 다수의 이익을 묻는 질문에는 익명화된 피해 당사자의 요구를 다시 듣는 관점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 대화가 완성된 권리 목록이나 한 사람의 요구를 언제나 우선하는 정책 공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2
다수의 이익을 위한 정책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작은 통계로만 표현될 때 그 사람의 경험과 말할 권리를 다시 드러내야 한다. 개발사업의 이주민, 감시정책의 표적이 되는 소수자, 의료배분에서 제외되는 장애인과 고령자, 전쟁과 치안정책의 민간인은 전체 효율 속에서 쉽게 익명화된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정책 담당자가 모든 당사자를 직접 만난다는 뜻보다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증언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구제받을 통로를 갖게 한다는 뜻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의 요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모든 권리를 절대화할 수도 없다. 제한된 의료자원을 나누거나 공공 안전을 지킬 때에는 비교가 필요하지만, 효율의 이름으로 어떤 집단을 처음부터 덜 가치 있는 생명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가장 보이지 않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
3
침해해서는 안 되는 핵심은 사람을 제거 가능한 숫자나 범주의 사례로만 취급하지 않을 권리다. 생명과 신체, 고문 금지, 법적 인격, 말하고 이의를 제기할 기회는 타자의 얼굴이 제도 안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기본 조건이 된다. 다수의 이익을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피해 당사자를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불가피한 부담의 이유와 범위를 설명하며, 대안·보상·구제와 재검토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레비나스는 완성된 권리 목록이나 정책 계산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보편적 규칙이 적용되는 순간에도 그 규칙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타자의 요구가 남는다는 경계를 제시한다. 정의는 여러 타자 사이를 비교해야 하지만, 비교가 끝난 뒤에도 희생된 사람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의 정당성은 총이익뿐 아니라 누가 비용을 떠안았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피해를 줄이고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까지 포함해 평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