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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155

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어야 하는가?

성공은 종종 경쟁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 지위, 영향력을 얻는 것으로 측정된다. 비교는 현재 위치를 쉽게 보여 주고 희소한 기회를 배분하는 기준을 제공하지만, 성취의 의미를 타인의 결과에 의존하게 만든다. 내가 성장해도 다른 사람이 더 앞서면 실패로 느껴질 수 있고, 공동의 발전보다 상대의 뒤처짐이 이익이 되는 구조가 생긴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인간이 사회적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면서도, 삶의 목표와 가치가 모두 한 줄의 순위로 배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다는 기준은 무엇을 측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소득과 직함, 성적, 기록은 비교하기 쉽지만 관계의 질, 건강, 공공에 대한 기여, 의미 있는 배움은 단일한 수치로 나타나기 어렵다. 경쟁이 능력을 드러내고 노력의 동기를 줄 수 있는 영역도 있고, 출발 조건과 자원이 다른 사람을 같은 결과로 평가하면 불평등이 강화되는 영역도 있다. 성공을 자기 기준으로만 정의하면 사회적 책임과 실제 역량 평가를 피할 수 있고, 타인과의 비교만 따르면 자신의 가치와 조건이 사라질 수 있다. 학생은 상대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기회를 얻지만 학습의 깊이와 협력은 순위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기업가는 경쟁사를 이기는 일을 성공으로 보면서도 노동자의 삶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함께 평가받는다. 예술가는 판매량과 명성, 작품의 의미 사이에서 성공의 기준을 고민하고, 운동선수는 순위와 개인 기록, 팀 기여를 서로 다르게 경험한다. 부모와 또래의 비교 속에서 직업과 주거를 평가하거나, 국가가 경제 규모만으로 발전을 측정하는 일도 앞섬의 기준이 삶을 조직하는 사례다. 기준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경쟁과 순위를 모두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능력과 환경을 이해하는 정보가 되고, 공정한 경쟁은 탁월성을 자극할 수 있다. 다만 앞섬이 성공의 유일한 언어가 되면 협력, 충분함, 서로 다른 삶의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질문의 핵심은 개인적인 만족만으로 성공을 정의하는 데 있지 않다. 타인과의 상대적 위치, 자신의 성장, 공동의 조건과 가치가 성공이라는 판단 안에서 어떤 비중과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아리스토텔레스 - 비교 순위보다 삶 전체의 탁월한 활동

#### *Ēthika Nikomacheia* (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러나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진부한 말처럼 보이며, 행복이 무엇인지 더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인간의 기능을 먼저 확인할 수 있다면 그런 설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피리 연주자나 조각가나 예술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이나 활동을 가진 모든 것에서 선과 잘함이 그 기능에 있다고 여겨지듯, 인간에게도 기능이 있다면 그러할 것이다. 목수와 무두장이에게는 어떤 기능이나 활동이 있는데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는가? 인간은 기능 없이 태어나는가? 아니면 눈과 손과 발, 일반적으로 각 부분에 기능이 있는 것이 분명하듯, 인간에게도 그 모든 것과 별개의 기능이 있다고 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생명은 식물에도 공통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을 찾고 있다. 따라서 영양과 성장의 삶은 제외하자. 다음에는 감각의 삶이 있겠지만, 이것 또한 말과 소와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성적 원리를 가진 부분의 활동하는 삶이 남는다. 그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이성에 따르는 의미에서 이성적 원리를 가지며, 다른 하나는 이성을 소유하고 사유하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성적 부분의 삶”에도 두 의미가 있으므로 우리가 뜻하는 것은 활동이라는 의미의 삶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더 적절한 의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능이 이성적 원리를 따르거나 포함하는 영혼의 활동이고, 어떤 사람과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의 기능이 종류상 같다고 말한다면, 이를테면 리라 연주자와 좋은 리라 연주자가 그렇고 모든 경우에 기능의 이름에 선의 탁월함이 더해진다면, 곧 리라 연주자의 기능은 리라를 연주하는 것이고 좋은 리라 연주자의 기능은 잘 연주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인간의 기능을 어떤 종류의 삶, 곧 이성적 원리를 포함하는 영혼의 활동이나 행위라고 정하며 좋은 인간의 기능을 그것들을 훌륭하고 고귀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한다면, 또 각 행위가 그에 적절한 탁월함에 따라 수행될 때 잘 수행된다면, 인간의 선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으로 드러난다. 덕이 여럿이라면 가장 좋고 가장 완전한 덕에 따른 활동이다. > 그러나 “완전한 삶에서”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제비 한 마리나 하루가 여름을 만들지 않듯이, 하루나 짧은 시간이 사람을 복되고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7장, Bekker 1097b22–1098a20, W. D. Ross 영어 번역의 기능 논증과 바로 이어지는 완전한 삶의 문단;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classics.mit.edu/Aristotle/nicomachaen.1.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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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선을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에서 찾고, 그 활동을 잘하는 기준을 덕과 연결한다. 행복은 잠시 얻은 결과나 평판 하나가 아니라 완전한 삶에 걸친 활동의 질과 관련된다. 따라서 남에게 성공적으로 보인다는 사실과 실제로 잘 살아간다는 판단은 구별된다. 다만 이 대목이 각자의 선호를 모두 같은 좋은 삶으로 승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성공 기준에 적용하려면 내가 원하는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를 이루는 행위가 어떤 습관과 삶을 만드는지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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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동료보다 빨리 승진했지만 건강과 관계가 무너졌다면 상대 순위는 높아도 삶 전체의 번영은 의심할 수 있다. 연구자가 인용 수 경쟁에서 뒤져도 정직한 연구와 학생 교육에 기여한다면 중요한 탁월성을 실현한다. 운동선수에게 기록과 순위는 실제 기술을 측정하지만 부상 관리, 팀워크, 공정한 경기라는 덕도 성공의 일부다. 부모·돌봄자·예술가처럼 성과가 숫자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활동은 비교 중심의 평가에서 과소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나는 만족한다”는 감정만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성공이라 부를 수도 없다. 어떤 능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성품은 무엇인지, 중요한 관계와 공동 조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시간이 지나도 지속 가능한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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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보다 앞섬은 제한된 자리와 공정한 경기에서는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지만 성공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내가 추구하는 활동의 고유한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잘 수행하는 기준을 세운다. 의사라면 동료보다 환자 수가 많은지만이 아니라 정확성·돌봄·협업을 보고, 사업가라면 시장점유율과 함께 제품의 유익·노동 조건·지속 가능성을 본다. 비교는 배울 대상을 찾고 공정성을 점검하는 데 사용하되 자기 가치 전체의 판결로 만들지 않는다. 짧은 승패보다 수년 동안 어떤 습관과 관계를 형성하는지 기록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성공은 시상대의 위치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좋은 목적에 맞게 발휘하고, 공동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성품을 실천하는 삶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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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 - 하나의 쓸모가 모든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음

#### 《莊子(장자)》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고 부른다.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에 맞지 않고 작은 가지들은 굽어 자와 컴퍼스에 맞지 않는다.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이 돌아보지 않는다. 지금 그대의 말도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모두 함께 버리는 것이다.” 장자가 말했다. “그대는 살쾡이와 족제비를 보지 못했는가? 몸을 낮추고 엎드려 돌아다니는 것을 기다리다가 동서로 뛰어오르며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지만, 덫에 걸려 그물에서 죽는다. 그런데 저 큰 소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처럼 크다. 크게 되는 것은 할 수 있어도 쥐를 잡지는 못한다. 지금 그대에게 큰 나무가 있고 그 쓸모없음을 걱정한다면,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고장과 넓고 텅 빈 들판에 심어, 그 곁에서 하는 일 없이 거닐고 그 아래에서 자유롭게 누워 쉬지 않는가? 도끼에 일찍 잘리지 않고 다른 것이 해치지도 않는다. 쓰일 데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곤궁하고 괴롭겠는가?”

『장자』 내편 제1편 「소요유」,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로 시작하는 마지막 대화 전체; 한문 원문의 한국어 번역. [한문 본문](https://zh.wikisource.org/wiki/%E8%8E%8A%E5%AD%90/%E9%80%8D%E9%81%99%E9%8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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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는 목재로 쓸 수 없는 나무를 무용하다고 평가한다. 장자는 그 기준을 바꾸어, 잘리지 않는 나무 곁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쉴 가능성을 제시한다. 쥐를 잡는 능력과 몸집의 큼도 서로 다른 기능이므로 같은 척도로 평가할 수 없다. 이 질문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성과의 기준이 삶의 모든 가치를 포괄하는지 묻는 데 적용할 수 있다. 원전은 무용한 사람이 더 우월하다는 서열을 새로 세우거나 생계와 책임을 무시하라는 명령을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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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시험에서 빠르게 답하지 못하는 학생이 깊은 관찰과 창작 능력을 가질 수 있고, 승진 경쟁에서 뒤처진 직원이 팀의 지식과 신뢰를 지탱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면 관계와 시민권, 고유한 경험의 가치를 지운다. 기업가의 매출과 예술가의 유명세는 한 측면의 성과지만 실패한 시도에서 생긴 기술과 공동체의 변화는 다른 척도를 요구한다. 육아·간병·지역 활동처럼 시장 가격이 낮거나 없는 노동도 삶을 유지한다. 반대로 “나만의 기준”이라는 말로 약속 위반과 타인 피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장자의 질문은 경쟁을 거부하라는 일률적 명령이 아니라 지금의 경주가 내 능력과 목적을 제대로 드러내는지, 다른 장에서는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탐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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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기준을 세울 때에는 순위 지표와 절대적 성장, 관계와 공동 기여, 몸과 시간의 지속 가능성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출발 조건과 규칙의 공정성을 확인하고, 비교가 필요 없는 영역에서는 자신의 이전 상태와 가치에 비추어 변화를 살핀다. 한 기준에서 뒤처졌다면 존재 전체의 실패로 일반화하기 전에 환경·역할·도구를 바꾸었을 때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시험한다. 성공 목록에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일, 지켜 낸 건강과 관계, 다른 사람에게 열어 준 가능성도 기록할 수 있다. 장자의 큰 나무는 일등이 되지 않아도 살아갈 공간을 만든다. 성공은 언제나 앞줄에 서는 일이 아니라, 획일적 쓸모에 잘려 나가지 않고 자신의 크기와 리듬에 맞는 자리를 찾아 다른 생명과 그늘을 나누는 삶일 수 있다.
이 관점은 경쟁에서 패한 뒤 위로를 만드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경주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 기준이 무엇을 보상하고 무엇을 희생시키는지 묻게 한다. 더 높은 자리를 원한다면 그것이 실제로 원하는 활동과 삶을 주는지, 단지 열등감에서 벗어날 표식인지 살핀다. 다른 척도를 택할 때에는 그 선택의 현실적 비용과 타인에 대한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장자의 자유는 평가에서 도망치는 무책임보다 평가의 한계를 알고 여러 쓰임과 삶의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에 가깝다. 그 공간은 다른 사람도 각자의 기준으로 살아갈 여지를 함께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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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르네 지라르 - 앞선 사람을 따라 욕망하는 모방의 구조

#### *Things Hidden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세상이 시작된 이래 감추어진 것들)

인간이 갑자기 모방을 그만둔다면, 모든 형태의 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르네 지라르, 『Things Hidden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Stephen Bann·Michael Metteer 영어 번역, 제1부 제1장 A절 「Acquisitive Mimesis and Mimetic Rivalry」, 7쪽 해당 문장;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dokumen.pub/things-hidden-since-the-foundation-of-the-world-0804722153-97808047221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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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는 모방을 문화와 학습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소유하려는 행동을 모방하면 같은 대상에 욕망이 모여 경쟁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남의 성공을 참고하는 모든 행위가 잘못인 것은 아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배우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지위나 물건을 차지하려는 것은 구별된다. 자신의 성공 기준을 검토할 때에는 얻으려는 대상이 실제 필요와 가치에 맞는지, 비교 상대가 사라져도 여전히 원하는지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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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채용에서는 제한된 자리 때문에 상대적 순위가 실제 결과를 좌우한다. 기업의 시장점유율, 선거의 득표, 경기의 기록에도 앞섬이 활동의 규칙으로 들어 있다. 이 경우 비교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경쟁에서 얻은 자격과 보상이 어떤 삶과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지 별도로 평가할 수 있다. 조직 안에서 직급 경쟁이 협업 정보를 숨기게 하거나, 연구자가 인용 수 때문에 질문을 고르고, 창작자가 조회 수가 높은 형식을 계속 복제한다면 비교 지표가 활동의 목적을 바꾸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도 주택, 결혼, 자녀, 소득의 순서가 성공의 표준처럼 작동하면 서로 다른 조건과 욕구가 하나의 경주로 환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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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것은 일부 경쟁적 제도에서 필요한 성과 기준일 수 있지만 삶 전체의 성공 기준이 되기 어렵다. 지라르의 분석은 순위를 무시하라고 지시하기보다 그 순위가 나의 욕망을 어떻게 만들고 경쟁자를 어떻게 닮게 하는지 보게 한다. 목표를 세울 때에는 비교 지표와 함께 그 활동의 내재적 가치, 관계에 미치는 영향, 승패 이후에도 지속되는 관심을 기록할 수 있다. 모델에게서 배우되 같은 대상을 독점해야만 인정받는 구조를 줄이고, 서로 다른 목표와 협력 가능한 성취를 찾는 것도 가능하다. 성공은 경쟁자를 제거한 뒤 얻는 고정된 신분이 아니라, 자신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그 욕망이 타인의 실패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삶의 방향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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