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 Archive
WQ146

갈등 중인 두 사람 사이에서 편을 들라는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까?

갈등 중인 두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동시에 어느 쪽이 옳은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중립을 지키려 할 수 있지만, 침묵이 더 강한 사람의 행동을 묵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충분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쪽 편을 들면 갈등을 확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지울 수 있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공정함과 충성, 피해 보호, 관계 유지가 서로 다른 방향의 책임을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을 대등한 의견 차이로 볼 수도 없고, 모든 호소에 즉시 판정을 내릴 수도 없다. 편을 든다는 말에는 감정을 들어 주는 일, 사실 판단에 동의하는 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 상대와 관계를 끊는 일이 섞여 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과 모든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구분될 수 있다. 폭력과 괴롭힘처럼 권력과 피해가 뚜렷한 상황에서 양쪽 모두에게 같은 책임을 묻는 중립은 부당할 수 있다. 반면 정보가 불완전하고 서로 다른 기억이 있는 갈등에서는 확인과 숙고가 필요하다. 중재 역할을 맡을 능력과 권한이 있는지, 비밀을 지킬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자녀에게 어느 부모의 편인지 묻는 일은 자녀에게 성인의 갈등을 부담시킨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한 동료를 지지할 때에는 피해 보호와 사실 확인, 조직 절차가 함께 필요하다. 친구 두 명의 이별이나 다툼에서 각자가 상대와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할 수 있고, 가족 재산 분쟁에서는 오랜 충성과 이해관계가 섞인다. 정치적·종교적 공동체의 내부 갈등, 학교 폭력, 온라인 공개 폭로에서도 중립과 지지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어떻게 응답할지 묻는 일은 언제나 중립을 지키거나 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쪽을 자동으로 선택하는 규칙을 찾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아는 사실과 모르는 사실, 감정적 지지와 판단의 범위, 안전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구분할 수 있다. 편을 들라는 요구 자체가 관계 통제의 방식인지, 실제 위험 속에서 연대가 필요한 요청인지도 살펴야 한다. 질문의 핵심은 갈등 밖에 깨끗하게 머무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섣부른 판정과 관계의 도구화에 빠지지 않는 책임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마틴 루서 킹 주니어 - 중립이라는 선택이 만드는 결과

#### *Letter from Birmingham Jail*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나는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3년 4월 16일, “Moreover, I am cognizant” 단락의 둘째 문장; 영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본문](https://crmvet.lib.duke.edu/docs/bhamlbj.html).

정의보다 “질서”에 더 헌신하는 사람

같은 편지, “First, I must confess”로 시작하는 백인 온건파 비판 단락, “who is more devoted” 구절; 영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본문](https://crmvet.lib.duke.edu/docs/bhamlbj.html).

1
킹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행동을 비판하면서 그 행동을 낳은 불의에는 같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백인 온건파가 긴장 없는 질서를 정의보다 앞세우면, 기다리라는 요구가 불의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이 편지는 인종차별과 비폭력 직접행동의 구체적인 맥락에 속한다. 모든 사적 갈등에서 한 사람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일반 명령은 아니다. 갈등의 소란을 줄이는 일과 실제 피해를 줄이는 일이 같은지 묻게 하는 적용이 가능하다.
2
두 친구가 헤어진 뒤 서로 연락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는 양쪽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전달자 역할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스토킹이나 폭력을 호소한다면 “둘 다 소중하다”는 말만으로 중립을 유지해서는 안전 문제가 가려진다. 직장 내 갈등에서도 업무 방식에 대한 상호 불만과 상사의 보복·차별은 같은 종류가 아니다. 학교 괴롭힘을 단순한 성격 충돌로 부르면 힘이 약한 학생에게 화해를 강요하게 된다. 가족 안에서는 부모의 이혼 갈등에 자녀를 증인과 심판으로 끌어들이는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 편을 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지지해 달라는 뜻인가?”, “제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안전이나 권리가 위협받는가?”, “제 참여가 갈등을 줄이는가 확대하는가?”를 구분해 물어야 한다.
3
응답은 사람과 행동과 절차를 분리해 구성할 수 있다. “두 분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사적인 메시지는 전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삼각관계를 거절하면서도, “모욕과 위협은 중단되어야 하며 안전 확보에는 협력하겠습니다”라고 원칙을 밝힐 수 있다. 듣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증언하지 않고, 알고 있는 내용은 축소하지 않으며, 비밀 유지의 한계도 미리 말해야 한다. 중재할 역량이나 중립성이 없다면 전문 중재자·인사 절차·상담·보호기관을 연결하고 물러나는 것이 책임 있는 선택이다. 킹의 통찰은 ‘아무 편도 들지 않음’을 도덕적으로 비어 있는 자리로 보지 않게 한다. 침묵과 지연이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지 살피고, 사람에 대한 맹목적 충성 대신 안전·존엄·사실·공정한 절차의 편을 선택해야 한다.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존 폴 레더락 - 사건 뒤의 관계 구조를 바꾸는 갈등 전환

#### 「Conflict Transformation」 (갈등 전환) — Beyond Intractability

관계는 갈등 전환의 중심에 있다.

존 폴 레더락, 「Conflict Transformation」, Beyond Intractability, 2003년 10월, 「Conflict Transformation: A Simple Definition」의 「Human Relationships」 첫 문장; 저자와 출판사 승인 아래 Michelle Maise가 단행본을 압축한 글; 영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본문](https://www.beyondintractability.org/essay/transformation).

1
레더락은 표면적인 쟁점의 해결과 그 쟁점이 생겨난 관계·구조의 변화를 함께 본다. 갈등의 영향도 개인적·관계적·구조적·문화적 차원으로 나눈다. 따라서 중재자는 누구의 주장을 지지할지만 정하기보다, 누가 말할 수 있고 어떤 반복되는 관계가 피해를 만드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접근은 당장의 위험을 덮고 대화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다. 관계의 장기적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현재의 안전과 참여자의 선택을 보존해야 한다.
2
친구 둘이 서로의 말을 전해 달라고 요구할 때 전달을 반복하면 오해가 커지고 중간 사람이 갈등의 통로가 된다. 이 경우 직접 대화의 조건을 묻고, 원문 메시지를 왜곡 없이 확인하거나, 전달자 역할을 중단할 수 있다. 팀의 두 구성원이 업무 배분으로 싸운다면 개인의 태도만 조정하기보다 역할 정의, 승인 절차, 평가 보상이 한쪽에 부담을 몰아주는지 봐야 한다. 가족 갈등에서는 오래된 서열과 경제적 의존이, 공동체 갈등에서는 세대·성별·종교적 권위가 발언 가능성을 달리할 수 있다. 폭력이나 강압이 있는 관계를 대등한 협상으로 다루면 피해자가 더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안전 평가와 전문 지원이 먼저다. 갈등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양쪽과의 관계, 비밀 유지 범위, 결정 권한, 중재를 중단할 조건을 분명히 해야 한다.
3
응답은 “누구 편인지”라는 질문을 “어떤 역할과 원칙을 맡을 수 있는지”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한 사람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지 않겠습니다. 두 분이 동의하면 대화 규칙을 정하는 자리에 함께하겠습니다”, “사실 확인 전에는 결론을 내리지 않지만 위협과 모욕이 멈춰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각각을 따로 들을 때에는 비밀로 유지할 내용과 공유할 내용을 합의하고, 한쪽의 말만으로 다른 쪽을 압박하지 않는다. 당장의 합의뿐 아니라 이후 의사결정 방식, 책임 분담, 재발 시 절차를 다뤄야 전환이 가능하다. 이해관계가 크거나 전문성이 부족하면 물러나 적절한 중재자에게 연결하는 것도 역할의 일부다. 레더락의 관점은 편들기를 거절하는 냉담함과 무조건적 중립 사이에, 사실·안전·관계 구조를 함께 다루는 책임 있는 제삼자의 자리를 제시한다.
제삼자는 자신도 관계망의 일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쪽과 더 가까운지, 결정 결과에서 이익을 얻는지, 특정 집단의 규범을 당연시하는지를 먼저 밝히면 숨은 편향을 줄일 수 있다. 중재 과정이 길어질수록 정기적으로 당사자의 동의와 자신의 역량을 재확인하고, 역할이 수사·상담·징계와 뒤섞이면 분리해야 한다. 역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회피가 아니라 공정한 과정의 조건이다.

↑ 질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