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 Archive
WQ122

가족 안에서 돌봄 부담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까?

가족 돌봄은 시간과 신체 노동, 감정적 주의, 경제적 비용을 요구한다. 겉으로는 한 가족의 공동 책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 미혼 자녀, 가까이 사는 사람, 소득이 낮아 일을 조정하기 쉬운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공정함을 단순히 같은 시간이나 비용으로 나누기 어렵고, 각자의 능력과 관계, 과거의 돌봄 경험, 생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돌봄을 많이 맡는 사람이 반드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도 아니며, 적게 맡는 사람이 언제나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분담의 결과와 과정 모두를 살펴야 한다. 공정한 분담은 동일한 몫, 능력에 따른 몫, 필요에 따른 몫, 과거에 받은 돌봄에 대한 보답처럼 서로 다른 원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직접 간병, 비용 부담, 행정 처리, 병원 동행, 정서적 지지는 형태가 달라 비교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노동만 계산하면 계획하고 연락하며 걱정하는 정신적 부담이 빠질 수 있다. 돌봄받는 사람의 선호도 중요하지만 특정 가족을 유일한 돌봄 제공자로 지목할 때 그 사람의 삶과 충돌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와 유급 돌봄을 이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가족 내부의 선택지도 달라진다. 노부모 간병에서 가까이 사는 딸이 일상 돌봄을 맡고 다른 형제는 비용만 내는 경우, 시간과 돈의 가치를 어떻게 비교할지 문제가 된다.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의 장기 지원을 한 형제에게 미리 기대하는 관행은 가족 역할과 개인의 미래를 연결한다. 부부가 아픈 자녀를 돌볼 때 소득이 낮은 사람이 경력을 중단하면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경제 격차가 생긴다. 이혼가정, 재혼가정, 해외에 사는 가족, 선택가족에서는 법적 책임과 실제 친밀함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명절과 일상 가사도 돌봄 부담의 일부다. 공정함을 묻는 일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똑같은 일을 배정하는 데 있지 않다. 각자의 시간과 건강, 소득, 돌봄받는 사람과의 관계, 이미 맡은 책임을 공개적으로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개인 간 협의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서비스 부족과 성별 규범 같은 구조적 원인이 가족 갈등으로 바뀐다. 질문의 핵심은 누가 더 희생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데 있지 않다. 돌봄의 여러 형태와 숨은 비용을 보이게 하고, 한 사람의 삶을 지속적으로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가족과 사회의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 이해할지에 있다.

1. 아리스토텔레스 - 공정한 분담은 같은 몫보다 관련된 차이를 비례에 반영한다

#### *Ēthika Nikomacheia*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는 부정의한 사람과 부정의한 행위가 모두 불공정하거나 불균등함을 보였다. 이제 어느 경우든 그 두 불균등한 것 사이에 중간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것은 균등한 것이다. 더 많고 더 적은 것이 있는 모든 행위에는 균등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정의한 것이 불균등하다면, 정의로운 것은 논증이 없어도 모두가 생각하듯 균등하다. 균등한 것이 중간이므로 정의로운 것도 중간일 것이다. 이제 균등함은 적어도 두 가지를 함축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것은 중간이고 균등하며, 어떤 사람들에 관련되는 것이어야 한다. 균등한 것이 중간인 한에서는 더 큰 것과 더 작은 것 사이에 있어야 하고, 균등한 한에서는 두 가지를 포함하며, 정의로운 한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것은 적어도 네 항을 포함한다. 그것이 실제로 정의로운 것이 되는 대상인 사람들은 둘이며, 그것이 드러나는 사물들, 곧 분배되는 대상들도 둘이다. 사람들 사이와 해당 사물들 사이에는 같은 균등함이 있을 것이다.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등하지 않다면 동등한 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동등한 사람들이 불균등한 몫을 가지거나 받는 경우, 또는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몫을 받는 경우가 다툼과 불평의 기원이다. 분배는 ‘가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서도 이는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분배에서 정의로운 것은 어떤 의미의 가치에 따라야 한다고 동의하지만, 모두가 같은 종류의 가치를 지목하지는 않는다.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인의 지위와 같다고 보고, 과두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부나 고귀한 출생과 같다고 보며, 귀족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탁월함과 같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제3장, 1131a10–29, 분배적 정의 논의 첫 문단; W. D. Ross 영어 번역.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번역본](https://classics.mit.edu/Aristotle/nicomachaen.5.v.html)

1
이 문단은 정의로운 분배를 사람들 사이와 분배 대상들 사이의 비례로 분석한다. 어떤 차이를 ‘가치’로 삼을지를 두고 정치 체제마다 의견이 다르다는 점도 명시한다. 따라서 인용 자체가 현대 가족의 성별·건강·소득별 분담 기준을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2
예를 들어 세 형제자매 가운데 한 사람은 부모와 가까이 살고, 한 사람은 경제적으로 넉넉하며, 다른 한 사람은 만성질환과 어린 자녀를 돌보고 있을 수 있다. 주당 시간을 정확히 삼등분하면 이동거리와 건강의 차이를 무시한다. 가까이 사는 사람이 일상 돌봄을 전부 맡고 나머지가 가끔 비용만 보내는 방식도 지속되기 어렵다. 한 사람은 방문과 식사를, 다른 사람은 비용과 행정을, 또 다른 사람은 정기적인 휴식 대체를 맡는 식의 서로 다른 기여가 가능하다. 이때 돈을 더 내는 사람이 모든 의사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돌봄을 받는 가족의 의사, 실제 수행 시간, 긴급대응의 부담, 경력 손실을 함께 기록해야 각 기여가 보인다. 가족마다 자원과 관계의 역사가 다르므로 단 하나의 비율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3
공정한 분담을 논의하려면 먼저 필요한 돌봄을 과업별로 펼쳐 놓고,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자원과 제약을 사실의 언어로 제시해야 한다. 그다음 각 기준이 목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합의한다. “딸이니까”, “장남이니까”, “가까이 사니까 당연히” 같은 말은 관련성을 증명하지 않은 채 역할을 고정한다. 반대로 과거에 부모에게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부담을 기대할지는 가족의 역사와 현재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합의는 한 번의 최종 판결보다 일정 기간 뒤 다시 평가하는 배분안이 될 수 있다. 질병 단계, 고용 상태, 이사와 출산에 따라 비례의 근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어느 가족 구성원이 더 효도하는지를 판정하지 않는다. 부담을 나누는 기준이 공개되어 있고, 관련 있는 차이가 반영되며, 한 사람의 희생을 관습으로 숨기지 않는지를 묻는 데 도움을 준다.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에바 페더 키테이 - 의존 노동의 부담은 가족 밖의 사회도 함께 져야 한다

#### *Love’s Labor: Essays on Women, Equality and Dependency* (사랑의 노동)

의존 노동자가 돌봄의 책임을 수행할 때 도움과 지원을 제공하는 사회제도들을 확보하는 원리들이 있어야 한다.

Eva Feder Kittay, 『Love’s Labor』(1999), 제4장 「The Benefits and Burdens of Social Cooperation」, ‘Reciprocity and Doulia’, 108쪽 마지막 문단의 두 번째 문장. 영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 [영어 본문](https://syllabus.pirate.care/_preview/library/Eva%20Feder%20Kittay/Love%27s%20Labor_%20Essays%20on%20Women%2C%20Equality%20and%20Dependency%20%28415%29/Love%27s%20Labor_%20Essays%20on%20Women%2C%20Equality%20an%20-%20Eva%20Feder%20Kittay.pdf)

1
108쪽의 이 문장은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도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적 원리를 제시한다. 107쪽에서 둘리아는 필요가 있는 사람을 돌보느라 자신도 지원이 필요해지는 사람이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이어 주는 관계로 설명된다. 109쪽에서는 돌봄의 부담과 비용을 의존 노동자 혼자 떠안지 않고, 돌봄 관계를 보존할 책임을 사회가 함께 맡아야 한다고 전개한다.
2
가족회의에서 누가 주말을 맡고 누가 병원비를 낼지 정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선택지가 모두 과로라면 가족 내부의 균등 배분만으로 공정성이 생기지 않는다. 중증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와 형제자매, 치매 부모를 장기간 돌보는 성인 자녀, 말기 환자의 배우자는 서로 시간을 나누어도 전문 간호, 소득 보전, 휴식 지원이 없으면 함께 소진될 수 있다. 특히 여성, 미혼 자녀, 일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가장 잘한다’는 이유로 부담이 집중된다. 키테이의 관점은 가족 구성원의 능력뿐 아니라 장기요양 서비스, 활동지원, 방문간호, 단기 보호, 유급 돌봄휴가, 공적 비용 지원을 분담표 안에 넣는다. 가족이 이용 가능한 제도를 모르는지, 제도가 실제 필요보다 부족한지, 신청 과정 자체가 새로운 노동이 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3
따라서 공정한 분담의 단위는 가족 구성원 몇 명에 머물지 않는다. 첫째, 돌봄을 받는 사람의 필요와 의사를 중심에 두되 돌봄 제공자의 수면·건강·소득·휴식도 필수 조건으로 기록한다. 둘째, 직접 돌봄과 함께 조정·감시·신청·대기 같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계산한다. 셋째, 가족 안에서 재배치할 몫과 국가·지역사회·고용주에게 요구할 지원을 구분한다. 한 구성원이 더 많은 돌봄을 자발적으로 맡더라도 언제든 휴식과 재협상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랑을 이유로 무기한 책임을 고정해서는 안 된다. 키테이의 이론이 모든 가족 갈등의 배분 비율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가 더 희생할 것인지만 묻던 논의를, 의존을 함께 떠받치는 제도와 자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넓힌다. 가족의 공정성은 부담의 동일한 분배뿐 아니라 돌봄을 담당한 사람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계속 살아갈 조건을 보장하는 데서 평가된다.
여기서 공적 지원은 가족애를 약화시키는 외부 개입이 아니다. 돌봄 제공자가 소득과 건강을 잃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기반이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가족 한 명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지원자와 생활 방식이 늘어난다. 따라서 서비스 이용을 가족의 실패로 보거나, 반대로 공적 서비스가 있다는 이유로 가족의 정서적 책임이 모두 끝났다고 보는 두 해석을 피해야 한다. 의존을 함께 나누는 제도는 양쪽의 자유를 넓히는 조건이다.

↑ 질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