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 Archive
WQ110

목표나 성과를 정하지 않은 시간을 일상에 어떻게 남겨둘까?

현대의 일상은 공부, 일, 운동, 취미, 휴식까지 목표와 성과로 조직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을 잘 사용했다는 느낌이 결과물과 기록에서 오면 목적 없는 산책, 멍하니 있기, 즉흥적인 대화는 낭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시간은 회복, 상상, 관계, 감각의 여지를 제공하며 삶이 계획 밖에서 움직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목표 없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순간 그것 역시 달성해야 할 과제가 될 수 있고, 생계와 돌봄이 바쁜 사람에게는 여백 자체가 특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를 정하지 않은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과 반드시 같지 않다. 결과를 미리 규정하지 않은 독서, 놀이, 대화, 만들기처럼 활동은 있지만 평가 기준이 열려 있을 수 있다. 휴식도 다음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될 때에는 몸이 계속 생산성의 논리에 묶인다. 반대로 모든 목표를 배제한 시간만 진정한 자유라고 보면 구조와 계획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 사람의 경험을 놓칠 수 있다. 목표와 무목적성은 하루 안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며, 한 활동 안에서도 오갈 수 있다. 아이가 정해진 교육 프로그램 없이 노는 시간에는 탐색과 관계가 생기지만, 안전한 공간과 돌봄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결과를 정하지 않은 실험에서 새로운 표현을 발견할 수 있고, 연구자는 직접적인 성과가 없는 사유와 대화에서 문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직장인은 점심시간까지 업무 연락을 받으며 휴식의 경계를 잃고, 돌봄 제공자는 혼자 있는 짧은 시간조차 집안일로 채울 수 있다. 종교적 안식일, 친구와의 산책, 정원 가꾸기, 음악 감상, 창밖을 보는 시간도 성과와 다른 시간 경험을 보여 준다. 일상에 남겨 둔다는 말은 일정표에 빈칸 하나를 만드는 기술로 축소되지 않는다. 빈 시간이 생겼을 때 느끼는 불안과 죄책감, 그 시간을 다시 유용하게 만들려는 압력, 타인의 요구가 들어오는 방식을 함께 보아야 한다. 또한 여백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는지도 중요하다. 이 질문의 핵심은 목표를 가진 시간을 부정하거나 무위의 상태를 이상화하는 데 있지 않다. 성과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이 인간의 주의와 관계, 창조성, 존재감에 어떤 자리를 가지며, 일상의 시간 구조가 그런 경험을 어떻게 허용하거나 밀어내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1. 노자 - 비어 있음의 쓰임

#### 《道德經(도덕경)》
《도덕경》 11장은 수레바퀴의 중심, 그릇의 속, 방의 문과 창처럼 비어 있는 부분이 사물의 쓰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일정표의 빈 시간도 아직 목표가 배정되지 않은 무가치한 칸이 아니라 활동과 관계가 숨 쉴 수 있는 조건으로 볼 수 있다.
저작과 위치: 《도덕경》 제11장, 유(有)가 이로움을 만들고 무(無)가 쓰임을 만든다는 대목.
#### 중심 생각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지만, 그 비어 있는 곳 때문에 수레의 쓰임이 생긴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 비어 있는 곳 때문에 그릇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그 비어 있는 곳 때문에 방의 쓰임이 생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은 이로움을 만들고, 없는 것은 쓰임을 이룬다.

《도덕경》 제11장: 三十輻共一轂,當其無,有車之用。埏埴以為器,當其無,有器之用。鑿戶牖以為室,當其無,有室之用。故有之以為利,無之以為用。

원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아리스토텔레스 - 여가를 자유로운 삶의 중심에 두기

#### *Politika*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일을 잘하기 위해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가를 잘 누리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그의 스콜레(scholē)는 단순한 휴식이나 오락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을 뜻한다. 목표 없는 시간은 삶의 목적을 다시 묻는 공간이 된다.
저작과 위치: 《정치학》 제7·8권, 노동·휴식·여가와 교육의 관계, 음악 교육의 목적을 논하는 부분.
#### 중심 생각

삶 전체는 일과 여가, 전쟁과 평화로 나뉘며, 우리의 행위 가운데 어떤 것은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어떤 것은 고귀한 것을 지향한다. 전쟁은 평화를 위해, 일은 여가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것은 고귀한 것을 위해 선택되어야 한다.

Aristotle, *Politics* VII.14, 1333a30–1333b5.

자연 자체는 우리가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가를 고귀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다시 말하건대 모든 것의 첫 원리다. 일과 여가가 둘 다 필요하더라도 여가는 일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완전한 목적이므로, 여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Aristotle, *Politics* VIII.3, 1337b30–1338a1.

제7권 본문
제8권 본문

↑ 질문으로 돌아가기

3.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 - 안식일은 시간 안에 세우는 성소다

노자가 비어 있음의 쓰임을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여가를 논한다면, 헤셸은 목표와 성과에서 벗어난 시간을 유대교의 안식일 전통 속에서 ‘시간의 성소’로 이해한다. 기술 문명은 물건을 만들고 공간을 소유하며 환경을 통제하는 능력을 높이지만, 모든 시간을 생산과 획득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다. 안식일은 남은 시간에 쉬는 개인 취미가 아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만들고 사고팔고 지배하는 활동을 멈추며, 존재·관계·기쁨·기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동의 질서를 세운다. 목표 없는 시간은 일정의 빈칸보다 무엇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멈출 것인지에 관한 실천이다.
#### *The Sabbath: Its Meaning for Modern Man* (안식일)
헤셸은 유대교를 공간보다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종교로 묘사한다. 인간은 주중에 공간의 사물과 씨름하지만 일곱째 날에는 시간의 거룩함에 참여한다. 안식은 노동을 다시 잘하기 위한 충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의 성과와 소유가 인간 가치의 전부가 아님을 몸으로 확인하는 날이며, 창조 세계를 조작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는 연습이다. 안식일의 구체적인 계명과 공동체적 의례를 지운 채 일반적인 휴식 기술로만 바꾸면 헤셸의 신학적 의미가 줄어든다. 동시에 이 사상은 종교 여부와 관계없이 시간이 생산성에 완전히 점령되는 삶을 성찰하게 한다.
저작과 위치: 『안식일: 현대인을 위한 그 의미』, ‘시간의 건축’과 기술 문명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는 장
#### 중심 생각

안식일들은 우리의 위대한 대성당이다.

Abraham Joshua Heschel, *The Sabbath: Its Meaning for Modern Man*, Farrar, Straus and Giroux, 1951, p. 8.

헤셸은 유대교를 공간의 사물을 거룩하게 하는 종교보다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종교로 묘사한다. 안식일은 노동을 더 잘하기 위한 충전 시간에 그치지 않고, 만들고 소유하고 통제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존재·관계·기도·기쁨 자체에 머무는 ‘시간의 성소’다. 따라서 안식은 남은 시간에 우연히 생기는 여백이 아니라 공동체가 반복적으로 보호하는 시간의 질서다.
본문

↑ 질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