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 Archive
WQ063

포부를 갖는 것과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양립할 수 있는가?

포부는 아직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향해 현재를 움직이게 하고, 만족은 이미 주어진 삶의 가치와 충분함을 느끼게 한다. 두 태도는 일상에서 자주 긴장한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면 현재의 부족함이 선명해지고, 지금에 만족하면 변화하려는 힘이 약해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회도 성취와 발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감사, 균형, 현재를 누리는 삶을 권한다. 이 질문은 욕망의 크기를 조절하는 기술보다, 인간이 미래를 향하는 존재이면서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이중적 조건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묻는다. 포부에도 서로 다른 성격이 있다. 타인의 인정이나 지위 경쟁에서 비롯된 목표, 능력을 펼치고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목표, 불안과 결핍을 피하려는 목표는 같은 성취 욕구처럼 보여도 삶에 미치는 의미가 다르다. 만족도 체념, 감사, 현실 수용, 자기보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가능성을 닫는 경우가 있고, 변화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포부와 만족이 양립하는지는 두 단어의 표면적 대비보다 각각이 무엇을 향하고 무엇에서 생겨나는지를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 직장인은 승진과 전문성 향상을 원하면서 현재의 업무와 동료 관계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예술가는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추구하면서 이미 만든 작품의 의미를 인정할 수 있고, 운동선수는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하면서 현재 몸의 한계와 회복 속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기대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문제를 만나며,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삶을 계획하는 사람은 소비를 늘려야 행복하다는 압력과 현재 생활의 충분함 사이에서 흔들릴 수 있다. 공부, 건강, 관계, 신앙의 영역에서도 미래 지향성과 현재 수용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얽힌다. 이 물음의 핵심은 포부와 만족을 한 줄의 양끝에 놓을 수 있는지 검토하는 데 있다. 포부가 현재를 전면적인 결핍으로 규정하면 성취가 이어져도 만족의 시점은 계속 미뤄질 수 있다. 만족이 모든 변화의 필요를 지우면 고통과 부정의를 그대로 두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는 장기적인 목표를 견디게 하고, 포부는 현재의 능력과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게 한다. 두 태도의 긴장은 제거해야 할 오류라기보다 인간이 충분함과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하는 방식일 수 있으며, 질문은 그 긴장이 삶의 여러 영역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1. 에픽테토스 - 통제 가능한 노력에 두는 포부

에픽테토스는 외적 결과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내 통제 아래 있지 않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포부의 초점을 성취의 소유에서 판단과 훈련으로 옮긴다.
#### *Enchiridion* (엥케리디온)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은 현재의 조건을 인정하는 수용과 부당한 현실에 체념하는 태도를 구별한다.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계속하되 결과가 나의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 않게 한다.
저작과 위치: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5·8·17·20·48장.
#### 중심 생각
현재의 조건을 인정하는 수용과 부당한 현실에 체념하는 태도를 구별한다.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계속하되 결과가 나의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 않게 한다.
원전 번역: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판단, 충동, 욕망, 회피, 한마디로 말해 우리 자신의 행위에 속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몸, 재산, 평판, 공직,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닌 모든 것이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본성상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약하고 예속되어 있으며 방해받을 수 있고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래 예속된 것을 자유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방해받고 슬퍼하며 동요하고 신과 인간을 탓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오직 자기 것만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은 실제로 그렇듯 자기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아무도 너를 강제하지 못하고 아무도 너를 막지 못할 것이며, 너는 누구도 탓하거나 고발하지 않을 것이고, 네 의지에 반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적도 갖지 않을 것이다. 네게 해로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적당한 노력만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어떤 것들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고, 어떤 것들은 당분간 미뤄야 한다. 그런데 이 자유와 행복을 원하면서 동시에 공직과 부도 원한다면, 앞의 것을 추구하는 탓에 뒤의 것조차 얻지 못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을 반드시 놓치게 될 것이다.

Epictetus, *Enchiridion*, §1.

대조 텍스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크리슈나 - 행위에 전념하고 열매의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

『바가바드 기타』의 평정은 성공과 실패를 똑같이 무시하는 무관심이 아니다. 행위의 질을 높이되 열매를 소유하려는 집착 때문에 현재를 소모하지 않는 훈련이다.
#### *Bhagavad Gītā*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는 포부를 결과의 소유보다 행위 과정의 충실함에 두도록 이끈다. 결과가 기대와 어긋나도 학습과 수습을 이어 가며, 만족을 무행위의 구실로 삼지 않는다.
저작과 위치: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 제2·3·6·18장, 행위·평정·자기 의무.
#### 중심 생각
포부를 과정 지표로 번역하고 결과가 어긋났을 때 학습과 수습을 이어 간다. 만족을 무행위의 구실로 사용하지 않는다.
원전 번역:

너에게 권리가 있는 것은 오직 행위에 대해서이며, 그 행위의 열매에 대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행위의 열매가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말고, 무행위에도 집착하지 말라. 오 다난자야여, 집착을 버리고 요가에 굳게 서서 행위를 수행하라. 성공과 실패를 똑같이 여기라. 이러한 평정이 요가라고 불린다. 결과를 얻으려는 행위는 지혜의 요가보다 훨씬 낮다. 오 다난자야여, 분별의 지혜에 귀의하라. 열매를 위해 행위하는 사람들은 가련하다. 지혜에 결합된 사람은 이 삶에서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 모두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요가에 힘써라. 요가는 행위의 능숙함이다.

*Bhagavad Gītā* 2.47–50.

대조 텍스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

3. 바울 - 목표를 향한 전진과 형편 속의 자족

#### *Pros Philippēsious* 3–4 (빌립보서 3–4장)
《빌립보서》에는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기에 앞을 향해 달려간다는 표현과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고백이 함께 나온다. 바울은 로마의 구금 상태에서 공동체에 편지를 쓰며 자신의 삶을 완성된 성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간다. 동시에 풍부함과 궁핍, 배부름과 굶주림을 모두 겪으며 외적 조건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전부 결정하지 않도록 배웠다고 말한다.
저작과 위치: 신약성서 《빌립보서》 3장 12~14절과 4장 11~13절.
#### 중심 생각
포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이고, 만족은 현재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둘을 경쟁 관계로 놓으면 포부는 현재의 결핍을 과장하고 만족은 변화를 포기하는 상태처럼 보인다. 바울의 언어에서 두 태도는 서로 다른 대상에 적용된다. 그는 자신이 이미 완전해졌다고 여기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만, 자신의 존엄과 소망을 현재의 성취 수준이나 환경에 맡기지는 않는다.
자족은 아무 변화도 바라지 않는 감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부정하거나 불의한 상황에 순응하는 말도 아니다. 궁핍을 실제로 겪으면서도 삶의 의미가 조건의 풍부함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배우는 태도다. 포부 역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끝없는 비교와 구별된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 분명할 때 성취는 정체성을 얻기 위한 경쟁보다 이미 받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활동이 된다.
원전 번역:

내가 이미 얻었다거나 이미 완전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붙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잡으신 바로 그것을 나도 붙잡으려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내가 이미 그것을 붙잡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한다. 뒤에 있는 것은 잊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뻗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로부터 부르신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빌립보서》 3:12–14.

내가 부족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 있든 그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비천하게 지내는 법도 알고 풍족하게 지내는 법도 안다. 배부를 때에도 굶주릴 때에도, 풍족할 때에도 궁핍할 때에도, 모든 상황에서 살아가는 비결을 배웠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

《빌립보서》 4:11–13.

대조 텍스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