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중요했던 가치를 바꾸는 것은 배신인가, 성장인가?
사람은 성장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순서를 바꾼다. 젊을 때에는 성취와 독립을 중시하다가 돌봄과 관계에 더 큰 무게를 둘 수 있고, 한때 헌신했던 종교나 정치적 신념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살던 사람이 뒤늦게 자기표현과 자유를 중심에 놓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문제로 느껴지는 까닭은 가치가 단순한 취향보다 깊게 정체성, 약속, 소속, 과거의 선택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가치를 바꾸면 현재의 삶이 달라지고, 과거의 나를 어떻게 이해할지와 함께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설명할지도 다시 묻게 된다. 배신과 성장이라는 두 표현은 변화의 서로 다른 측면을 포착한다. 배신이라는 말에는 스스로 세운 기준이나 타인과의 약속을 편의에 따라 버렸다는 판단이 담긴다. 성장이라는 말에는 경험과 성찰을 통해 기존 기준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이해가 담긴다. 그러나 실제 변화에는 두 요소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 더 넓은 관점을 얻은 결과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실제 손실을 줄 수 있고, 오래된 충성을 지키려는 태도가 성실함이면서도 새로운 사실을 외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변화의 동기, 과정, 결과를 하나의 명칭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업을 삶의 중심 가치로 삼던 사람이 가족의 돌봄을 위해 승진 기회를 포기하는 경우, 본인은 우선순위의 성숙한 조정으로 느낄 수 있지만 동료는 공동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은 양심의 정직함을 따랐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가족은 공유된 전통의 단절을 경험할 수 있다. 환경 문제를 새롭게 인식한 뒤 소비 습관을 바꾸거나, 경쟁을 중시하던 교사가 협력 중심의 교육관으로 이동하는 일도 있다. 정치적 견해의 변화, 결혼과 출산에 관한 생각의 변화, 성공의 정의가 달라지는 일에는 개인의 내적 변화와 관계적 파장이 함께 나타난다. 이 질문은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즉시 가르는 데 있지 않다. 어떤 경험과 이유가 변화를 만들었는지, 그 변화가 이전의 약속과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과거의 자신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도 현재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살피게 한다. 변하지 않는 일관성에는 신뢰와 지속성이 있으며, 수정할 수 있는 태도에는 학습과 자기교정이 있다. 동시에 일관성은 경직으로, 변화는 자기합리화로 나타날 수 있다. 가치의 변화가 배신인지 성장인지 묻는 일은 결국 정체성의 연속성과 성찰을 통한 변화가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지 이해하는 작업이다.
1. 아우구스티누스 - 사랑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변화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은 과거 전체를 거짓으로 지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지나치게 사랑했고 무엇을 소홀히 했는지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다. 변화에는 연속성과 단절이 함께 있다.
#### *Confessiones*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오랜 습관과 관계가 이전 가치에 묶여 있으므로 새로운 선언만으로 변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에 진 빚과 피해를 인정하면서 현재의 더 큰 선을 행동으로 반복한다.
저작과 위치: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1권 1장, 제8권 회심, 제10권 기억과 사랑.
#### 중심 생각
오랜 습관과 관계가 이전 가치에 묶여 있으므로 새로운 선언만으로 변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에 진 빚과 피해를 인정하면서 현재의 더 큰 선을 행동으로 반복한다.
원전 번역:
심플리키아누스가 당신의 종 빅토리누스에 관한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를 본받고 싶어졌다. 바로 그것이 그 이야기를 들려준 목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황제 율리아누스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문학과 수사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공포되었을 때, 빅토리누스가 그 법에 순순히 복종하여 벙어리의 혀를 웅변하게 하시는 당신의 말씀보다 자신의 ‘말의 학교’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내게 용감하다기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가 자기 시간을 온전히 당신께 드릴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갈망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의지로 만든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원수는 내 의지를 붙들고 그것으로 사슬을 만들어 나를 단단히 묶어 놓았다. 왜곡된 의지에서 욕망이 생겼고, 욕망에 복종하자 습관이 되었으며, 습관에 저항하지 않자 필연처럼 굳어졌다. 이 고리들이 서로 이어져—그래서 내가 그것을 ‘사슬’이라고 부른다—나를 단단한 노예 상태에 붙들어 놓았다. 한편 당신을 섬기고 오직 당신만이 확실한 기쁨이신 나의 하나님, 당신을 거리낌 없이 누리고자 새롭게 생겨난 의지는 아직 이전 의지를 이길 만큼 강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굳어진 이전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두 의지, 하나는 오래된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고 하나는 영적인 것이 서로 싸웠고, 그 갈등 속에서 내 영혼은 찢어졌다.
Augustine, *Confessiones*, Book VIII, Chapter 5, §10.
대조 텍스트 확인/Book_VIII)
2. 프리드리히 니체 - 가치의 재평가와 자기창조
니체는 계승한 가치가 생명을 강화하는지 약화시키는지 묻는다. 자기극복은 과거의 자신을 혐오하는 일이 아니라 우연과 실패를 새로운 형식 속에 통합하는 작업이다.
#### *Die fröhliche Wissenschaft* (즐거운 학문)
프리드리히 니체의 『즐거운 학문』은 변화가 단지 유행과 인정에 따른 것인지, 더 정직하고 책임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본다. 모든 과거를 긍정한다는 말로 피해와 잘못을 미화하지 않는다.
저작과 위치: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서문과 276·290·341절, 자기 형성과 운명애.
#### 중심 생각
변화가 단지 유행과 인정에 따른 것인지, 더 정직하고 책임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본다. 모든 과거를 긍정한다는 말로 피해와 잘못을 미화하지 않는다.
원전 번역:
한 가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격에 ‘양식’을 부여하는 것—그것은 위대하고 드문 예술이다. 자기 본성이 보여 주는 모든 강점과 약점을 바라보고, 모든 것이 예술적이고 이성적으로 나타나며 심지어 약점조차 눈을 즐겁게 할 때까지 그것들을 하나의 정교한 계획 속에 빚어 넣는 사람이 이 놀라운 예술을 실행한다. 여기에는 많은 제2의 본성이 더해지고, 저기에는 제1의 본성의 일부가 제거된다. 두 경우 모두 오랜 연습과 날마다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없앨 수 없는 추한 것은 감추고, 다른 것은 숭고한 것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형태를 거부하는 모호한 것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멀리 보이는 전망을 위해 남겨 두고 활용한다. 그것들은 멀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암시하게 한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을 때,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조직하고 빚어 온 것이 하나의 동일한 취향이 행사한 강제였음이 드러난다. 그 취향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생각보다 덜 중요하다. 하나의 취향이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강하고 지배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이런 강제와 자기 법 아래의 구속과 완성에서 가장 섬세한 기쁨을 경험할 것이다. 그들의 격렬한 의지의 열정은 훈련되고 정복되어 봉사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누그러진다. 궁전과 정원을 만들 때조차 그들은 자연을 그대로 자유롭게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힘이 없고 양식의 구속을 미워하는 약한 성격의 사람들에게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들은 이런 쓰라린 강제가 자신에게 가해진다면 그 아래에서 자신이 비천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봉사하는 순간 노예가 되고, 봉사를 미워한다. 이런 정신들은—아무리 높은 수준의 정신일 수 있다 하더라도—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자유로운 자연, 곧 거칠고 자의적이고 환상적이며 무질서하고 놀라운 것으로 형성하고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오직 그런 방식으로만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가 필요하다. 인간이 어떤 시와 예술을 통해서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데 이르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은 바라볼 만한 존재가 된다. 자기 자신에게 불만인 사람은 언제나 그 불만에 대한 복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그의 추한 모습을 계속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그 희생자가 될 것이다. 추한 것을 바라보는 일은 사람을 비열하고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Friedrich Nietzsche, *Die fröhliche Wissenschaft* (*The Gay Science*), Book IV, §290, “One Thing is Need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