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생각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나의 의도나 인격과 어떻게 구별할까?
사람의 마음에는 원해서 떠올린 생각과 저절로 나타난 생각이 함께 존재한다. 해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장면, 종교적 금기를 어기는 문장,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이미지, 중요한 자리에서 실패하는 상상이 갑자기 떠오를 수 있다. 생각의 내용이 충격적일수록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가 실제로 원한다는 뜻인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그러나 생각이 발생한 사실, 그 생각에 동의하는 판단, 행동하려는 의도, 실제 행동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이 차이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질문이 된다. 원하지 않는 생각은 여러 맥락에서 나타난다. 아이를 아끼는 부모가 사고 장면을 반복해서 상상하거나, 운전 중 갑자기 위험한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종교인은 신성 모독적인 문장 때문에 신앙과 인격을 의심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도 문화에서 배운 편견의 표현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 큰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최악의 장면을 미리 상상하며, 폭력과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과거의 이미지가 현재에 침입하는 듯 느낄 수 있다. 꿈과 환상, 창작 속의 생각도 실제 욕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논쟁을 만든다. 생각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그 내용을 더 자주 의식하게 만들 수 있다. 떠오르지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면 주의가 그 생각에 머물고, 생각을 없애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덕적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모든 생각이 의미 없다고 보면 반복되는 욕망과 계획, 편견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놓칠 수 있다. 사람은 생각을 선택하지 못해도 그 생각을 해석하고 반복해 키우며 행동과 연결하는 과정에는 여러 정도의 관여를 갖는다. 어디에서 의도와 책임이 시작되는지는 단순한 발생 여부로 정해지지 않는다. 이 질문은 생각을 무시하거나 긍정하라는 결론을 먼저 두지 않는다. 생각이 떠오른 방식, 그때 느낀 감정, 생각에 대한 동의와 거부, 반복해서 주의를 주는 과정, 실제 행동과의 관계를 구분해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원하지 않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는 사실은 그 내용과 자신의 가치가 충돌한다는 정보일 수 있다. 동시에 생각의 발생과 인격을 완전히 분리해도 마음의 습관과 사회적 학습을 성찰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사건과 의도,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묻는 데 핵심이 있다.
1. 에픽테토스 — 떠오른 인상을 곧바로 참된 판단이나 행동의 지침으로 승인할 필요는 없다
에픽테토스(Epictetus, 50년경–130년경)는 외적 조건에 좌우되는 삶에서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지키려 한 스토아 철학자다. 그는 무엇이 마음에 나타났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구별하며, 자신의 몫인 판단을 훈련하도록 권했다. 제자 아리아노스가 가르침을 정리한 *Encheiridion*(엥케이리디온)에서는 이 구별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한다.
제20장의 직접적인 상황은 모욕을 받고 성이 나는 경험이다. 이를 원치 않는 생각의 문제에 연결할 때에도 인상과 판단의 구별을 참고하되, 경전이나 임상 진단서처럼 모든 정신적 사건을 분류하는 책으로 읽지는 않는다.
>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판단, 추구, 욕망, 회피, 한마디로 우리의 행위인 모든 것이다.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몸, 재산, 평판, 지위, 한마디로 우리의 행위가 아닌 모든 것이다.
>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본성상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가로막히지 않는다.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약하고 종속적이며 방해받고 다른 이에게 속한다. 그러므로 본성상 종속적인 것을 자유로운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에게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 너는 방해받고 슬퍼하고 동요하며 신과 사람을 탓하게 될 것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오직 실제로 네 것인 것만 네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의 것은 실제로 그러하듯 다른 이의 것으로 여긴다면, 누구도 너를 강제하거나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너는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원치 않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너에게 적도 없을 것이다. 해로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전: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 앞부분, 자신의 행위와 외적 조건을 구별하는 대목. 원전 번역
> *“그러므로 거친 인상이 나타날 때마다 ‘너는 인상일 뿐이며, 네가 나타내는 그대로의 사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힘써라. 그리고 네가 가진 기준들로 그것을 검토하라. 무엇보다 먼저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관한 것인지, 달려 있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인지 살펴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준비를 하라.”*
출전: 같은 책, §1 마지막 문단.
> *“너를 모욕하는 것은 욕하거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욕으로 나타내는 판단임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를 자극할 때에는 너를 자극한 것이 네 판단임을 알아라. 우선 그 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힘써라. 한 번 시간과 여유를 얻으면 자신을 다스리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출전: 같은 책, §20 전체.
2.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 원치 않는 생각의 내용과 그것을 실행하려는 의도, 강박의 순환은 구별된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는 강박장애에 관한 공공 안내에서 원치 않는 생각과 그에 뒤따르는 불안·강박행동의 관계를 설명한다. *Symptoms —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강박장애의 증상)은 생각의 충격적인 내용만으로 사람의 의도나 인격을 판단하지 않도록 돕는다.
이 안내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반복 확인이나 마음속 의례까지 살핀다. 밖으로 드러난 행동이 적어도 생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그것들은 생각일 뿐이며,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뜻은 아니다.”*
출전: NHS, 「강박장애의 증상」, 「강박사고」 중 원치 않는 폭력적·성적 사고를 설명하는 대목. 공식 안내
3. 토마스 아퀴나스 — 숙고 이전의 움직임과 이성·의지가 관여한 동의를 같은 정도의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년경–1274)는 인간의 행위와 덕, 죄와 궁극적 목적을 이성과 신앙의 관계 안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다. 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같은 정도로 자발적인 행위라고 보지 않았다. *Summa theologiae*(신학대전) 제1부의 제2편 제74문은 죄가 어떤 능력과 행위에 속하는지 검토한다.
이 논의는 현대의 침투사고 이론과 다르다. 아퀴나스는 이성에 앞서는 무질서한 감각적 움직임에도 소죄의 범주를 적용하므로, 그의 주장을 모든 비자발적 생각의 도덕적 무관함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 *“이성의 숙고 없이 하는 일을 사람은 완전하게 자기 자신의 행위로 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주된 부분이 그 일에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인간 행위가 아니며, 완전한 덕의 행위나 죄의 행위일 수도 없고, 그 종류에서 불완전한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앞서 일어나는 그러한 감각적 움직임은 소죄이며, 죄라는 종류 안에서 불완전한 것이다.”*
출전: 아퀴나스, 『신학대전』 I–II, q.74, a.3, ad 3. 원전 번역
> *“몸의 생명 원리를 파괴하는 무질서가 몸의 죽음을 일으키듯이, 영적 생명의 원리인 궁극적 목적을 파괴하는 무질서는 영적 죽음, 곧 대죄를 일으킨다. 그런데 어떤 것을 목적에 질서 지우는 일은 감각적 욕구가 아니라 이성에만 속한다. 목적에 관한 무질서도 다른 것들을 목적에 질서 지우는 능력에만 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죄는 감각적 욕구 안에 있을 수 없고, 이성 안에만 있을 수 있다.”*
출전: 같은 책, I–II, q.74, a.4, 본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