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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044

감사와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양립할 수 있는가?

감사는 자신이 받은 도움과 좋은 조건을 알아보는 태도이고,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해로운 관계와 제도를 드러내는 행위로 이해된다. 두 태도는 함께 존재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자주 충돌한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비판하면 배은망덕하다는 평가를 받고, 감사에 집중하면 피해와 불평등을 말할 언어가 약해질 수 있다. 한 사람이나 제도가 좋은 것과 해로운 것을 동시에 제공할 때, 감사와 비판을 어떤 관계로 이해할지가 질문이 된다. 가족 관계에서는 부모가 제공한 돌봄과 희생에 감사하면서 통제와 폭력의 영향을 말할 수 있다. 직장인은 고용과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고 느끼면서도 과로와 차별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주자와 난민은 안전과 지원을 받은 사회에 감사하라는 요구 속에서 제도적 배제와 인종차별을 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장학금과 복지 지원을 받은 사람은 제도의 도움을 인정하면서 지원 과정의 모욕과 사각지대를 비판할 수 있다. 환자는 생명을 구한 의료진에게 감사하면서 설명 부족과 의료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종교 공동체도 소속과 위로를 제공하면서 권력 남용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감사가 자발적인 감정인지 의무로 요구되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권한이 큰 사람이 감사를 요구하면 도움은 충성과 침묵의 대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부당함만 강조하는 서술이 실제로 받은 도움과 관계의 복잡성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선의와 제도의 구조가 다를 수 있고, 한 사람의 친절이 조직 전체의 불공정을 상쇄하지도, 조직의 문제 때문에 모든 개인적 도움의 의미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감사의 대상과 비판의 대상을 같은 층위로 볼 때 충돌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질문은 감사와 문제 제기 중 어느 태도가 더 옳은지 선택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무엇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그 도움에 어떤 기대와 권력이 붙어 있는지, 어떤 피해와 불평등을 말하려는지, 두 경험이 같은 관계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감사가 현실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경우와 부당함을 침묵시키는 언어가 되는 경우가 모두 있다. 비판 역시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행위로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 그 복수의 가능성이 질문을 만든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받은 도움을 기억하면서도 판단의 자율성과 정의를 지킬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는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로서, 권력과 일상의 책임 속에서 자신의 판단과 행위를 점검하려 했다. 그는 무엇을 받았는지 기억하는 일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배우는 과정과 연결했다. *Ta eis heauton*(명상록) 제1권은 가족과 스승, 동료들에게서 배운 성품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그 기록에는 호의를 받으면서 비굴해지지 않는 법, 다른 사람의 말을 성급히 승인하지 않는 법,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법도 포함된다. 감사가 판단을 포기하는 일인지 묻는 질문에 직접 연결되는 대목이다.
> *“루스티쿠스에게서는 내 성품에 개선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서 궤변가처럼 경쟁하려는 마음에 이끌리지 않는 법, 사변적인 문제에 관해 글을 쓰거나 짧은 권면 연설을 하거나, 많이 수련하는 사람인 양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려고 선행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수사학과 시와 화려한 글쓰기를 삼가고, 집 안에서 외출복을 입고 돌아다니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가 시누에사에서 내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처럼 소박하게 편지를 쓰는 법을 배웠다. 말로 나를 모욕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화해할 뜻을 보이면, 쉽게 마음을 풀고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주의 깊게 읽고 책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법,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성급히 동의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그가 자기 소장본에서 전해 준 에픽테토스의 강론들을 알게 된 것 역시 그의 덕분이다.
> 아폴로니오스에게서는 의지의 자유와 흔들리지 않는 목적의 확고함을 배웠다. 한순간도 이성 외의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고, 날카로운 고통 속에서도, 자식을 잃었을 때에도, 오랜 병중에도 한결같이 있는 법을 배웠다. 같은 사람이 매우 단호하면서도 유연할 수 있음을 살아 있는 본보기로 분명히 보았고, 가르칠 때 짜증 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철학적 원리를 설명하는 경험과 솜씨를 자기 장점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을 눈앞에 두었다. 그에게서 친구들이 베푸는 호의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받되, 그것 때문에 비굴해지지도 않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치지도 않는 법을 배웠다.”*
출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7–8. 원문 번역
> *“나의 형제 세베루스에게서는 친족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를 통해 트라세아, 헬비디우스, 카토, 디온, 브루투스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법이 적용되는 정치체제,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발언의 자유를 존중하며 운영되는 정치체제, 그리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왕정의 관념을 얻었다. 또한 철학을 중시하는 일에서 일관되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 선을 행하고 남에게 기꺼이 베푸는 성향, 좋은 희망을 품는 일,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일을 배웠다. 그에게서는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들에 관한 의견을 숨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추측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아주 분명했다.”*
출전: 같은 책, 1.14. 원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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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레더릭 더글러스 — 받은 혜택을 인정하더라도 권리와 자유의 요구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1895)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뒤 노예제 폐지와 흑인의 시민적 자유를 위해 활동한 저술가이자 연설가다. 그는 자유의 확대를 권력자의 자비만으로 설명하는 서술에 맞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직접 제기한 요구와 저항의 역할을 드러내려 했다. *West India Emancipation*(서인도제도 해방, 1857) 연설은 해방을 기념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한 투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 대목은 미국의 노예제와 노예제 폐지 운동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다. 도덕적 호소뿐 아니라 물리적 저항까지 논하는 원전의 강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를 모든 일상의 갈등에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 *“개혁의 철학에 관해 한마디 하겠다. 인간 자유의 진보에 관한 모든 역사는 자유의 존엄한 요구에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양보가 진지한 투쟁에서 태어났음을 보여 준다. 그 갈등은 사람들을 격동시키고 뒤흔들며 온 관심을 사로잡았고, 한동안 다른 모든 소란을 잠잠하게 했다. 그렇게 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투쟁이 없으면 진보도 없다. 자유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저항의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땅을 갈지 않고 곡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둥과 번개 없는 비를 원한다. 수많은 물결의 무서운 포효가 없는 바다를 원한다.
> 이 투쟁은 도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도덕적이면서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투쟁이어야 한다. 권력은 요구 없이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무엇에 조용히 복종하는지 알아보라. 그러면 그들에게 가해질 불의와 잘못의 정확한 척도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말이나 타격으로, 또는 둘 모두로 저항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폭군의 한계는 그가 억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견디는지에 의해 정해진다. 이런 생각에 비추어 보면, 흑인들이 그 악마적인 만행에 복종하고 도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저항하지 않는 한, 북부에서는 사냥당하고 남부에서는 붙들려 채찍질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대가를 치른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얻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 위에 쌓인 억압과 잘못에서 언젠가 벗어나려면, 그것들을 없애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노동으로, 고통으로, 희생으로,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의 목숨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
출전: 더글러스, 「서인도제도 해방」, 뉴욕주 캐넌데이과 연설(1857), 개혁의 철학과 요구·저항을 논하는 두 문단. 연설 원문 전사와 인쇄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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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편 기자 —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 안에서도 고통을 말하고 응답을 요구할 수 있다

『시편』의 시인들은 찬양과 감사뿐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 버림받은 감각을 하나님에게 말하는 기도 전통을 형성했다. 개별 시편의 역사적 저자와 생몰년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Tehillim*(시편) 13편에는 다윗과 관련된 표제가 있지만, 본문의 구체적인 집필자와 성립 연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 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잊은 것 같다는 탄원으로 시작하고, 응답을 청한 뒤 인애에 대한 신뢰와 노래로 나아간다. 탄원과 감사가 한 기도 안에 함께 있다는 점을 보려면 짧은 시 전체를 읽어야 한다.
> *“지휘자를 위하여. 다윗의 시.
> 주님, 언제까지 나를 영원히 잊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내게서 얼굴을 숨기시겠습니까?
> 언제까지 내 영혼 안에서 궁리하고 날마다 마음에 슬픔을 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원수가 나보다 높아지겠습니까?
> 주 나의 하나님, 나를 보시고 응답해 주십시오. 내 눈을 밝게 해 주십시오. 내가 죽음의 잠을 자지 않게 해 주십시오.
> 내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시고, 내가 흔들릴 때 나의 적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 그러나 나는 주의 인애를 신뢰합니다.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께 노래하겠습니다. 그가 내게 선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출전: 『시편』 13편 전체, 히브리어 성경 13:1–6(표제 포함), 일반적인 한국어 성경의 표제 및 13:1–6에 해당. 히브리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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