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얻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할 것이라는 예상은 선택과 노력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 합격, 승진, 주택, 결혼, 물건, 명성을 목표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실제로 그것을 얻었는데도 기쁨이 짧거나 공허함이 남을 수 있다. 이때 사람은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욕망이 향한 대상과 그 대상을 통해 기대한 감정·관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기대와 경험 사이의 차이가 왜 생기는지가 이 질문의 중심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감각적 즐거움과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처음의 강도가 줄어드는 적응이 있고, 목표에 도달하자 비교 기준이 더 높은 집단으로 옮겨 가는 변화가 있다. 원하는 직업을 얻었지만 실제 업무보다 사회적 인정과 안정성을 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다. 집을 사도 안전과 소속감이 생기지 않거나, 연애와 결혼을 통해 외로움 전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관계 안에서 다른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물건을 얻는 즐거움, 성취 과정의 몰입, 타인의 반응은 서로 다른 만족을 제공한다. 욕망은 미래의 장면을 단순하게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를 이룬 뒤에도 유지해야 할 일상과 비용, 새롭게 생기는 책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 노력 동안 목표가 삶의 구조와 정체성을 제공했다면, 달성 뒤에는 목표 자체보다 방향의 상실이 공허함을 만들 수 있다. 광고와 소셜 미디어는 결과의 상징을 강조하며 실제 생활의 복잡성을 줄여 보여 준다.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목표를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인 경우에는 달성 후 외부의 인정과 내부의 경험이 어긋날 수 있다. 한편 우울과 소진, 신체 상태는 성취와 무관하게 만족을 느끼는 능력에 영향을 준다. 이 질문은 더 적절한 목표를 찾거나 욕망을 줄이라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한 것이 대상 자체인지, 그 대상이 상징한 인정·안전·자유·관계인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만족의 짧음이 인간의 적응 때문인지 기대의 오류 때문인지, 실제 조건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인지, 새로운 욕망이 생긴 것인지에 따라 경험의 의미는 달라진다. 얻은 것과 기대한 삶 사이의 간격을 설명하는 것이 이 질문의 핵심이다.
1.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하나의 욕망을 충족해도 욕구하는 의지의 운동은 끝나지 않는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세계와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욕구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설명한 철학자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을수록 행복이 축적된다는 생각을 의심하고, 결핍과 충족이 반복되는데도 인간이 계속 무엇인가를 바라는 이유를 탐구했다. 여기서 의지는 결심이나 의지력보다 넓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개별 목표를 넘어 지속되는 맹목적인 추구를 뜻한다.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38은 욕망의 충족이 왜 지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지 설명한다. 이 대목은 미적 관조를 논하는 맥락에 놓여 있다. 대상을 소유하고 이용하려는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 주기 위해, 욕망에 묶인 일상의 구조를 먼저 제시한다.
“모든 의욕은 필요에서, 따라서 결핍에서, 따라서 고통에서 생겨난다. 소망의 충족은 그 소망을 끝내지만, 충족된 하나의 소망에 대해 적어도 열 개의 소망은 거부된 채 남아 있다. 더구나 욕망은 오래 지속되고 요구는 끝이 없는 반면, 충족은 짧고 빈약하다. 그러나 최종적인 충족조차 사실은 겉보기의 충족일 뿐이다. 충족된 소망은 언제나 즉시 새로운 소망에게 자리를 내준다. 둘 다 환상이며, 하나는 환상임이 알려졌고 다른 하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얻어진 어떤 욕망의 대상도 지속적인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오직 순간적인 만족만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거지에게 던져 주는 적선과 같아서, 오늘 그를 살려 두어 그의 비참함이 내일까지 이어지게 할 뿐이다.”
Arthur Schopenhauer,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Bd. I, §38; English translation by R. B. Haldane and J. Kemp,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I.
2. 에피쿠로스 — 한계를 가진 필요와 끝없이 커지는 욕망을 구별해야 만족의 기준이 생긴다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는 두려움과 헛된 믿음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사는 길을 탐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다. 그는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보면서도 모든 즐거움을 즉시 택하거나 모든 고통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어떤 욕망을 따를 때 삶이 안정되고 어떤 욕망을 따를 때 더 큰 동요가 생기는지 분별하는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다.
*Epistolē pros Menoikea*(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욕망을 구별하고 선택과 회피를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온에 연결한다. 이 편지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저술 제10권에 전해진다. 다음 대목은 욕망의 종류를 구별한 뒤, 그 구별이 왜 삶의 목적과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연속된 부분이다.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자연적이고 어떤 것은 헛되며, 자연적인 것 가운데 어떤 것은 필요하고 어떤 것은 단지 자연적일 뿐임을 생각해야 한다. 필요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은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은 몸의 편안함을 위해, 어떤 것은 생명 자체를 위해 필요하다. 이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모든 선택과 회피를 몸의 건강과 영혼의 동요 없음으로 돌릴 수 있으니, 이것이 복된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일단 이것이 이루어지면 영혼의 온갖 폭풍이 흩어지고, 살아 있는 존재는 더 이상 빠진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거나 영혼과 몸의 좋음을 완성할 다른 무엇인가를 구할 필요가 없다. 쾌락이 없어서 고통스러울 때에 우리는 쾌락을 필요로 하지만, 고통스럽지 않을 때에는 더 이상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Epicurus, *Epistolē pros Menoikea*, §§127–128, preserved in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X; English translation by Cyril Bailey.
3. 르네 지라르 — 대상을 얻어도 그 대상을 통해 닮고 싶었던 타인의 존재까지 얻지는 못한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1923~2015)는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욕망의 모방적 구조를 탐구한 문학 연구자이자 사상가다. 그는 인간이 대상을 전적으로 독립적으로 선택한다는 생각을 의심하고, 누군가가 그 대상을 가치 있게 보여 주는 과정에 주목했다. 욕망하는 사람과 대상 사이에 모델 또는 매개자가 있다는 설명이다.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는 세르반테스, 스탕달, 플로베르,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으며 이 관계를 분석한다. 제1장의 삼각형의 욕망은 주체·모델·대상의 관계를 보여 주고, 제3장은 대상을 얻은 뒤에도 기대했던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실망을 다룬다.
“주체는 대상을 소유해도 자신의 존재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기대했던 변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René Girard,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 ch. III, “Les métamorphoses du dés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