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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034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들 때 하나를 없애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은 한 대상과 사건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기쁘면서 슬프며, 안도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경험은 감정이 하나의 일관된 판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회와 개인은 “진짜 마음이 무엇인가”를 묻고 하나의 감정을 선택하도록 압박하기 쉽다. 상반된 감정 중 하나를 거짓이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기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두 감정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각각 무엇을 향하는지가 이 질문의 출발점이다. 감정의 대상과 시간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오랫동안 아픈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죽음은 슬프지만 고통과 돌봄 부담이 끝났다는 안도도 생길 수 있다. 승진을 기뻐하면서 동료와 멀어지는 상실과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이주자는 새 삶에 대한 기대와 고향을 떠나는 슬픔을 함께 경험한다. 관계를 끝낸 사람은 자유로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부모가 된 사람은 깊은 사랑과 자유를 잃은 분노를 같이 느낄 수 있다. 부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에는 감사와 경계가 겹친다. 각각의 감정은 사건의 다른 측면에 반응한다. 상반된 감정은 가치의 충돌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율성과 소속, 충성심과 공정성, 안전과 모험처럼 모두 중요한 가치가 한 선택 안에서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몸의 상태와 사회적 기대도 감정에 영향을 준다. 애도 중 웃음이 나오면 사랑이 부족한 것처럼 느끼고, 성공 뒤 불안을 느끼면 감사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떤 공동체는 분노의 표현을 허용하지 않고, 어떤 관계는 슬픔을 약함으로 본다. 허용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기보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거나 자신의 진짜 마음이 아닌 것처럼 처리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어느 감정을 따라야 하는지 결정하기 전에 감정의 복수성을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각각의 감정이 어떤 대상과 시간, 가치, 예상에 반응하는지 구분하면 겉으로 모순된 경험이 서로 다른 정보를 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감정을 없애야 다른 감정이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모든 감정이 행동의 동일한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의 공존과 행동의 선택을 분리해 보는 데 이 질문의 복잡성이 있다.

1. 바뤼흐 스피노자 — 하나의 대상이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작용하므로 반대 정서가 함께 생긴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자연의 인과관계 안에서 설명한 철학자다. 그는 정서를 의지로 선택한 단순한 태도보다, 몸의 활동 능력이 달라지는 과정과 그 변화에 대한 관념으로 보았다. 같은 대상도 우리의 몸과 기억, 상상에 여러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서로 반대되는 정서가 생기는 이유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에티카) 제3부 명제 17과 주석은 한 대상을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경우를 다룬다. 스피노자는 이를 마음의 동요라고 부른다. 이 말은 단순히 결정을 잘 못한다는 성격 평가보다, 상반된 정서가 함께 생기는 정신의 상태를 가리킨다.

“평소 우리에게 슬픔의 정서를 일으키는 어떤 것이, 평소 우리에게 그만큼 큰 기쁨의 정서를 일으키는 다른 것과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면, 우리는 그것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것이다.”

Baruch Spinoza,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III, propositio XVII.

“서로 반대되는 두 정서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정신의 상태를 마음의 동요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것이 정서와 맺는 관계는 의심이 상상과 맺는 관계와 같으며, 마음의 동요와 의심은 정도의 차이 외에는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앞선 명제에서 내가 이 마음의 동요를 한 정서의 직접적인 원인이면서 다른 정서의 우연적인 원인인 것들로부터 도출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한 것은 앞선 명제들로부터 더 쉽게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두 정서 모두의 작용 원인인 하나의 대상에서 마음의 동요가 흔히 생긴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본성이 다른 매우 많은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나의 같은 몸에 의해서도 매우 많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하나의 같은 것이 많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것 역시 하나의 같은 신체 부분에 많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로부터 하나의 같은 대상이 여러 상반된 정서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Baruch Spinoza,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III, propositio XVII, scholium.

라틴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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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그문트 프로이트 — 사랑과 적대는 같은 관계 안에서 공존하며 한쪽이 의식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로서, 사람이 자신에게 설명하는 동기만으로는 꿈과 증상, 반복되는 갈등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는 의식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망과 정서도 심리적 작용을 계속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과 적대가 함께 생기는 문제는 이러한 무의식과 갈등의 관점 안에 놓인다.
*Totem und Tabu*(토템과 터부) 제2논문은 금지와 욕망의 양가성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문화와 금기의 기원에 관한 추론은 정신분석적 가설의 성격을 지닌다. 일상에서 두 감정을 경험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에게 특정한 무의식적 소망이나 병리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터부가 지속된다는 사실은 한 가지를 가르쳐 준다. 터부를 지닌 민족들에게는 금지된 일을 하려는 원래의 욕망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터부 금지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가진다. 무의식에서는 그것을 위반하는 것보다 더 원하는 일이 없지만, 동시에 그것을 위반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위반하고 싶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두려움은 욕망보다 강하다. 그러나 그들 각각에게 그 욕망은 신경증 환자에게서처럼 무의식적이다.”

Sigmund Freud, *Totem und Tabu*, II, §2.

독일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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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샤 리네한 — 현재의 감정을 인정하는 일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마샤 리네한(Marsha M. Linehan, 1943년생)은 심리학자로서,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이해받으면서도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치료 방식을 개발했다. 그는 현재의 경험을 인정하는 일과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 서로 배제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두 요구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것이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중심에 놓인다.
*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경계선 성격장애의 인지행동치료)는 이 치료의 이론과 전략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수용은 모든 행동의 승인과 구별되며, 변화는 현재의 고통을 무시하는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임상적 논의를 일상의 상반된 감정에 연결할 수 있지만, 감정이 복잡하다는 사실만으로 진단을 추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수용의 기술은 변화의 기술만큼 중요하다.”

Marsha M. Linehan, *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ch. 1, p. 20.

영어 원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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