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행복을 시기할 때 내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기는 타인의 행복이나 성취를 보며 자신의 부족함과 박탈감을 느끼는 감정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사실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 장면에서 만나기 때문에, 축하와 불편함이 동시에 생길 수 있다. 시기는 흔히 부끄러운 감정으로 취급되어 숨겨지지만, 무엇을 가치 있다고 보고 누구와 비교하는지를 드러낸다. 다만 시기하는 대상을 그대로 갖고 싶다는 뜻인지, 그 대상이 상징하는 인정·안전·자유를 원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감정의 표면과 실제 갈망 사이의 차이가 이 질문을 만든다. 비교의 영역에 따라 시기의 내용도 달라진다. 동료의 승진이 부러울 때 원하는 것은 직위와 소득일 수도 있고, 능력을 인정받는 경험이나 선택권일 수도 있다. 친구의 결혼과 가족을 보며 느끼는 감정에는 친밀한 관계,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삶이라는 승인, 미래에 대한 안정이 섞일 수 있다. 여행과 여가를 부러워할 때에는 장소보다 시간의 자유를 갈망할 수 있고, 외모와 건강에 대한 시기에는 몸의 감각과 타인의 시선이 함께 작용한다. 예술가나 활동가의 명성을 보며 작품과 영향력보다 주목받는 삶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시기는 상대와의 관계, 비교의 공정성,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비슷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앞서갈 때 비교가 강해지고, 자신의 노력과 무관한 특권이 작용했다고 느끼면 시기와 분노가 겹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의 성공은 나도 가능하다는 기대를 주면서 동시에 뒤처졌다는 감각을 만들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결과의 밝은 장면을 반복해 보여 주고 과정과 비용은 가리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을 왜곡한다. 구조적 불평등에서 생긴 박탈감을 개인의 시기로만 설명하면 사회적 맥락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 질문은 시기를 긍정적인 동기로 바꾸거나 없애는 방법을 먼저 묻지 않는다. 상대가 가진 구체적인 대상, 그 대상이 내게 상징하는 삶, 비교를 촉발한 관계와 기준, 갖게 되었을 때 예상하는 감정을 분리해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시기에는 욕망과 상실, 인정의 필요, 경쟁, 부당함에 대한 판단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 타인의 행복이 왜 나의 부족함으로 경험되는지 살펴볼 때,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물건이나 지위인지 그 뒤에 있는 관계와 삶의 조건인지가 질문으로 드러난다.
1. 바뤼흐 스피노자 — 타인의 행복을 나의 손실로 상상할 때 시기가 생긴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인간을 자연의 인과 질서 안에서 이해한 철학자로서, 욕망과 정서가 어떻게 생기고 사람의 활동 능력을 바꾸는지 설명하려 했다. 그는 타인의 기쁨을 바라보는 마음도 이미 맺어진 관계와 상상의 작용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감정의 원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감정을 곧바로 비난하거나 정당화하기에 앞서,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움직였는지 밝히는 일이다.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에티카) 제3부는 정서의 모방과 시기를 구별하면서 둘의 연결을 보여 준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누리는 것을 한 사람만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같은 모방이 경쟁과 방해의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기는 자기 안에 이미 완성되어 있던 욕망을 단순히 드러내기만 하는 감정이 아니다. 비교 관계 자체가 무엇을 원하는지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와 비슷하고 우리가 아무런 정서도 품지 않았던 어떤 것이 어떤 정서를 겪는다고 상상하면, 바로 그 사실로 우리는 비슷한 정서를 겪는다.”
Baruch Spinoza,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III, propositio XXVII.
“어떤 사람이 오직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을 즐긴다고 상상하면, 우리는 그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증명.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을 즐긴다고 상상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기기를 욕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즐거움 때문에 우리의 기쁨이 방해받는다고 가정했으므로, 우리는 그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Baruch Spinoza,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III, propositio XXXII et demonstratio.
2. 애덤 스미스 — 타인이 받는 칭찬과 칭찬받을 만한 삶을 원하는 마음을 구별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도덕철학자로서, 사람들이 서로의 처지를 상상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판단과 자기평가가 형성되는 방식을 탐구했다. 그는 인간이 사랑과 승인을 원할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랑과 승인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보았다. 눈앞의 관중에게서 얻는 평판과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사이에는 긴장이 남는다.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도덕감정론) 제3부 제2장은 이 긴장을 칭찬과 칭찬받을 만함의 구별로 설명한다. 타인의 성취를 바라보는 마음에도 그 사람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얻고 싶은 욕구와, 그가 보여 준 탁월함을 갖추고 싶은 욕구가 함께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사랑받기만을 바라지 않고 사랑받을 만하기를, 곧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사랑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는 본래 미움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미움받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 곧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칭찬뿐 아니라 칭찬받을 만함을, 곧 아무에게도 칭찬받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칭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란다. 그는 비난뿐 아니라 비난받을 만함을, 곧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Adam Smith,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III.2.1.
3. 아리스토텔레스 — 상대가 잃기를 바라는 시기와 나도 얻기를 바라는 경쟁심은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는 인간의 행위와 성품을 공동체의 삶 속에서 탐구한 철학자로서, 감정이 어떤 판단과 관계에서 일어나고 행동을 어떻게 이끄는지 분석했다. 그는 비슷한 사람의 좋은 조건을 보고 괴로워하는 감정도 고통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상대의 소유를 없애려는 마음과 자신도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는 마음은 같은 결과를 향하지 않는다.
*Rhētorikē*(수사학) 제2권 제10~11장은 시기와 경쟁심을 구별한다. 여기서 경쟁심으로 옮기는 젤로스는 타인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기려는 승부욕보다, 자신에게도 가능한 좋은 것을 갖추려는 열망에 가깝다.
“이제 경쟁심에 관해, 어떤 상태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 때문에 느끼는지 말하자. 경쟁심은 본성이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높이 평가받으며 우리도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일종의 고통이다. 그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므로 경쟁심은 훌륭한 것이며 훌륭한 사람들에게 속하지만, 시기는 비열한 것이며 비열한 사람들에게 속한다. 한쪽은 경쟁심 때문에 좋은 것을 얻도록 자신을 준비하지만, 다른 쪽은 시기 때문에 이웃이 그것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Aristotle, *Rhētorikē*, II.11, 1388a.
4. 붓다 — 타인의 행복을 내 몫의 감소로 붙잡지 않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기른다
붓다(釋迦牟尼, 기원전 5세기 무렵 활동, 정확한 생몰년 미상)는 괴로움이 생기는 조건과 그 소멸의 길을 탐구한 고대 인도의 종교적 스승이다. 그는 탐욕과 미움에 이끌리는 마음을 훈련하고, 경험을 고정된 나와 나의 것으로 붙잡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초기불교에서 기쁨도 수행의 대상이며,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행복에만 마음을 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Aṅguttara Nikāya*(앙굿따라 니까야) 4.126은 자애·연민·수희·평정의 마음을 넓히고 그 안의 경험도 무상하고 무아인 것으로 관찰하는 수행을 설명한다. 수희는 타인의 행복에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다. 이 경의 목적은 사교적 축하를 잘하는 데 머물지 않으며, 집착에서 벗어나는 통찰과 사후의 귀결까지 포함한다.
“수행자들이여, 세상에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어떤 네 부류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자애가 함께하는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며 머문다. 두 번째 방향도, 세 번째 방향도, 네 번째 방향도 그렇게 한다. 이와 같이 위와 아래와 사방, 모든 곳의 모든 존재에 대하여 온 세계를 넓고 크고 한량없으며 원한과 악의가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며 머문다.”
*Aṅguttara Nikāya*, 4.126, *Dutiyamettāsutta*, 자애 수행의 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