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행동할 부분과 받아들일 부분을 어떻게 구별할까?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행동과 수용이 서로 반대되는 태도처럼 보인다.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놓치면 무력감이 커질 수 있고, 바꿀 수 없는 부분까지 책임지려 하면 소진과 자기비난이 생긴다. 그러나 현실의 사건은 완전히 통제 가능하거나 완전히 불가능한 두 범주로 나뉘지 않는다.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것,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것,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겹쳐 있다. 무엇을 행동의 대상으로 보고 무엇을 이미 주어진 사실로 볼지가 이 질문에서 문제 된다. 질병을 예로 들면 치료 선택과 생활 방식에는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결과와 회복 속도는 통제하기 어렵다. 가족의 중독이나 정신적 위기에서는 곁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경계를 표현할 수 있어도 상대의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직장의 구조조정에서는 개인의 업무와 협상, 이직 준비가 가능한 반면 조직의 최종 결정과 경제 상황은 외부에 있다. 기후 위기와 정치적 문제에서는 한 사람의 행동 효과가 작아 보여도 집단적 참여를 통해 영향력이 생길 수 있다. 관계에서는 자신의 말과 행동은 선택할 수 있지만 상대의 감정과 응답은 별도의 주체에 속한다. 수용이라는 말도 여러 뜻을 가진다. 사건이 이미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상황을 도덕적으로 옳다고 평가하는 것, 변화를 포기하는 것, 감정적 저항이 줄어드는 것은 서로 다르다.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은 생존을 위한 현실 인식으로도, 체념과 순응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행동 역시 결과를 직접 바꾸는 시도, 피해를 줄이는 준비, 증언과 기록, 자신의 태도를 조정하는 일로 나뉜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행동이 의미 없는지, 감당할 수 없는 노력에서 물러나는 일이 포기인지도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 질문은 행동할 목록과 포기할 목록을 간단히 만드는 문제를 넘어선다. 내가 가진 권한과 자원, 다른 주체의 자유,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 규모, 행동의 직접적·간접적 효과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통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과거의 실패가 만든 예상인지,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책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도 쟁점이 된다. 행동과 수용은 때로 함께 존재하며, 그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질문의 중심에 있다.
1. 에픽테토스 — 결과의 지배와 자신의 판단·선택을 구별한다
에픽테토스(약 50~135)는 로마 제국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로서, 외부 조건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자신의 판단과 도덕적 선택을 훈련하는 데서 찾았다. 그는 몸·재산·평판과 같은 외적 결과를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어도, 주어진 상황에 어떤 판단으로 응답할지는 자신의 몫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있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판단과 충동과 욕구와 회피, 한마디로 우리의 행위인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몸과 재산과 평판과 관직, 한마디로 우리의 행위가 아닌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에게 달린 것은 본래 자유롭고 가로막히거나 방해받지 않는다.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은 약하고 예속되어 있으며 방해받고 남에게 속한다.”
Epictetus, *Ἐγχειρίδιον*, 1.1–1.2.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사태 자체가 아니라 사태에 대한 판단이다. 가령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만일 두려운 것이었다면 소크라테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두려운 것은 죽음이 두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로막히거나 동요하거나 괴로워할 때에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우리 자신, 곧 자신의 판단을 탓해야 한다. 자신이 잘못되는 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의 일이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배우기 시작한 사람의 일이며, 다른 사람도 자신도 비난하지 않는 것은 배움을 이룬 사람의 일이다.”
Epictetus, *Ἐγχειρίδιον*, 5.1 전체.
2. 바가바드 기타 — 책임 있게 행위하되 결과를 완전히 소유하려는 집착을 놓는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 전통에 속하는 이 경전은 특정 개인의 저술로 확정하기 어려우며, 의무를 수행하는 삶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어떻게 함께 추구할지 묻는다. 이 책에서는 전쟁을 앞두고 주저하는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를 통해, 행위를 포기하는 것과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구별한다.
“그대에게 권한이 있는 것은 행위뿐이지, 그 열매에는 결코 없다. 행위의 열매를 동기로 삼지 말며, 행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말라.”
*Bhagavadgītā*, 2.47.
“다난자야여, 집착을 버리고 성공과 실패를 동등하게 여기며 요가에 굳게 서서 행위하라. 이러한 평등한 마음을 요가라고 부른다.”
*Bhagavadgītā*, 2.48.
“지혜와 결합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를 모두 벗어난다. 그러므로 요가에 힘써라. 요가는 행위에서의 능숙함이다.”
*Bhagavadgītā*, 2.50.
3. 한나 아렌트 — 혼자 통제하지 못하는 조건도 함께 행위하며 바꿀 수 있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독일 출신의 정치사상가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적인 세계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자유와 공동의 힘을 만들어 내는 조건을 탐구했다. 그는 행위의 결과를 한 사람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력함을 뜻하지 않으며, 복수의 사람들이 약속하고 협력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복수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지금까지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구와 똑같지는 않은 방식으로 같기 때문이다.”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Chapter I, §1, 복수성과 행위에 관한 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