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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023

나를 받아들이는 것과 내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감정과 욕구, 한계, 과거의 행동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한 행동까지 자기 일부로 인정하면 책임을 약화하거나 변화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려다가 자신 전체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면 사실을 보는 일과 자기처벌이 섞인다. “이것도 나다”라는 말이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표현인지, 행동의 결과를 가볍게 만드는 표현인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질문이 생긴다. 이 구별은 여러 사례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분노가 많은 사람은 감정이 생기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분노로 한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준 영향을 별도로 마주한다. 중독을 질병과 습관의 문제로 이해하는 일은 강한 충동과 신체적 변화를 설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빚과 관계의 손상을 어떻게 볼지는 남는다. 가정과 조직에서 폭력적인 언어를 배운 사람은 행동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나 피해자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울이나 실행 기능의 어려움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에도 능력의 한계, 의도, 반복된 결과, 주변의 부담이 서로 다른 층위로 존재한다. 자기 수용과 정당화의 경계는 원인과 책임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따라 흔들린다.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면 책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원인을 보지 않으면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을 계속 비난하는 태도는 잘못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신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해를 입은 사람보다 자신의 고통에 관심이 집중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수용의 언어는 고정된 정체성을 만들어 선택 가능성을 가릴 수 있다. 사실의 인정, 도덕적 평가, 피해의 회복, 앞으로의 정체성이 서로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이 질문은 자신을 용서할지 벌할지를 곧바로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감정인지 한계인지 행동인지 결과인지 구분하고, 잘못을 설명하는 언어가 누구의 경험을 보이게 하거나 가리는지를 이해하려는 물음이다. 한 사람을 그의 최악의 행동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행동의 책임을 어떻게 연결할지, 변화 가능성을 말하면서 과거의 피해를 어떻게 기억할지가 함께 남는다. 자기 수용과 정당화는 이 복수의 층위를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1. 아리스토텔레스 — 행동의 조건을 이해하는 일은 선택과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성품과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근거를 탐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서, 강제와 무지, 상황 속의 선택을 구별해야 칭찬과 비난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모든 행동을 비자발적이었다고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고 보았다.

“덕은 감정과 행위에 관계하며, 자발적인 것에는 칭찬과 비난이, 비자발적인 것에는 용서와 때로는 연민이 따른다. 그러므로 덕을 탐구하는 사람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이는 명예와 벌을 정하는 입법자에게도 유익하다. 강제나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비자발적인 것으로 보인다. 강제적인 것은 그 원리가 외부에 있고, 행동하거나 영향을 받는 사람이 거기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 경우다. 바람이나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데려가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하거나 어떤 훌륭한 것을 위해 하는 행동이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에는 논쟁이 있다. 가령 부모와 자녀를 장악한 폭군이 어떤 수치스러운 행동을 명령하며, 그것을 하면 그들이 살고 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경우다. 폭풍 속에서 화물을 바다에 던질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아무 조건 없이 생각하면 누구도 자발적으로 화물을 버리지 않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분별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한다. 이런 행동은 혼합되어 있지만 자발적인 것에 더 가깝다. 행하는 그때에는 그것을 선택하며, 행위의 목적은 그 상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도 행동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말해야 한다.”

Aristotle, *Ἠθικὰ Νικομάχεια*, III.1, 첫머리부터 혼합된 행위를 설명하는 대목까지.

“무지 때문에 행한 것은 모두 자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고통과 후회를 수반하는 것이 비자발적인 것이다. 무지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도 그 행동을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으므로 자발적으로 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괴로워하지 않으므로 비자발적으로 행했다고 할 수도 없다. 무지 때문에 행동한 사람 가운데 후회하는 사람은 비자발적으로 행한 것으로 보인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그와 다르므로 ‘자발적이지 않게 행한 사람’이라고 하자. 둘이 다르다면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는 편이 낫다.”

Aristotle, *Ἠθικὰ Νικομάχεια*, III.1, 무지로 인한 행위와 후회를 구별하는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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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자 —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다

孔子(전승상 기원전 551–479)는 배움과 관계 속의 실천을 통해 사람의 성품을 기르는 길을 제시한 사상가로서, 허물을 인정한 뒤 고치는 태도를 도덕적 성장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이미 잘못했다는 사실보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태도를 경계했으며, 수양은 완벽한 자기상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행동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 『孔子가 말했다. 잘못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
Reference: 『論語』「衛靈公」15.30.
> 『孔子가 말했다. 군자가 신중하고 무게 있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며, 배움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실함과 신의를 중심에 두어라. 자기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Reference: 『論語』「學而」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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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우구스티누스 — 잘못을 고백하고 은총을 받아들이는 일은 죄의 정당화와 다르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욕망과 의지, 죄와 은총의 관계를 탐구한 고대 기독교 신학자로서,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진실하게 말하면서도 절망에 고정되지 않을 근거를 하나님의 자비에서 찾았다. 그는 고백이 과거의 행위를 옳게 만드는 설명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은총을 찬양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러나 나의 가장 내밀한 의사이신 주여, 내가 어떤 유익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밝혀 주소서. 주께서는 나의 과거의 악을 용서하고 덮어 주셨으며, 믿음과 주의 성사로 내 영혼을 변화시켜 주 안에서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그 악에 관한 나의 고백이 읽히고 들릴 때 사람들의 마음은 깨어나, 절망 속에 잠들어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주의 자비를 사랑하고 은총의 달콤함을 맛보며 깨어 있게 됩니다. 그 은총으로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는 모든 약한 사람은 그 은총을 통해 강해집니다. 선한 사람들은 이미 악에서 벗어난 이들의 과거의 악을 듣고 기뻐합니다. 그것이 악이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기 때문입니다.”

Augustine, *Confessiones*, X.3.4, 과거의 악을 고백하는 유익에 관한 앞부분.

“그러나 그들은 무슨 유익을 위해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까? 주의 선물로 내가 얼마나 주께 가까이 나아가는지 듣고 나와 함께 기뻐하며, 나 자신의 무게 때문에 얼마나 지체되는지 듣고 나를 위해 기도하려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겠습니다. 나의 주 하나님,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주께 감사하고 우리를 위해 주께 간청하는 일은 작은 결실이 아닙니다. 형제의 마음이 주께서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내 안의 것을 사랑하고, 슬퍼하라고 가르치시는 내 안의 것을 슬퍼하게 하소서.”

Augustine, *Confessiones*, X.4.5, 현재의 자신을 고백하는 유익에 관한 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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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칼 로저스 — 사람에 대한 수용과 행동에 대한 평가는 함께 가능하다

칼 로저스(1902–1987)는 인간중심 상담을 발전시킨 심리학자로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방어적으로 왜곡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관계의 조건을 탐구했다. 그는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 대한 승인과 같지는 않으며, 수용과 공감이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직면하고 변화할 여지를 열 수 있다고 보았다.

“치료자는 내담자에 대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경험한다.”

Carl R. Rogers,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of Therapeutic Personality Change* (1957), “The Conditions”, 조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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