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과거를 자기 이해에 어떻게 포함할까?
기억은 주의와 감정, 이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과거를 그대로 보관한 영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어떤 장면은 선명하지만 주변의 맥락은 사라지고, 반복해서 들은 가족의 이야기가 자신의 기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오랜 기간, 극심한 스트레스 속의 사건, 술이나 약물의 영향을 받은 시간은 거의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 이해는 대개 과거의 연속성과 원인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게 기억할 때, 무엇을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일지가 문제가 된다. 기억의 차이는 여러 상황에서 나타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같은 갈등을 각자의 위치와 나이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고, 한 사람에게 사소했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랜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사고나 폭력의 생존자는 사건의 순서와 세부를 단편적으로 기억할 수 있으며, 이는 경험의 진실성과 법적 증언의 기준 사이에 긴장을 만든다. 치매나 뇌손상으로 기억이 약해진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가족의 설명과 기록에 의존하게 된다. 입양인이나 이주자는 자신이 경험하기 전의 가족사와 공동체 역사를 사진, 문서, 타인의 증언을 통해 자기 이야기 안에 포함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록은 잊었던 행동을 되돌려 주지만 당시의 감정과 맥락까지 복원하지는 못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사건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며, 강하게 확신하는 기억도 사실과 다를 수 있다. 타인의 기억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알지 못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지만, 권위 있는 가족이나 제도가 개인의 경험을 대신 규정할 위험도 있다. 기록은 날짜와 행동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 사건이 한 사람에게 가졌던 의미를 완전히 말하지 못한다. 특히 피해와 책임이 걸린 경우에는 개인의 자기 이해, 타인의 고통, 사실 확인, 법적 기준이 서로 다른 요구를 제시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 나머지를 지우기 어렵다. 이 질문은 기억의 공백을 반드시 채우거나 하나의 참된 서사를 확정하려는 시도보다, 불완전한 자료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묻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 타인이 증언하는 것, 문서로 확인되는 것, 끝내 알 수 없는 부분을 구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기억이 각자의 관점과 관계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지도 중요하다. 자기 이해는 완전한 과거 기록을 소유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망각과 불확실성을 포함하는 방식에 따라 책임과 관계, 현재의 감정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계속 남는다.
1. 존 로크 — 직접 기억하는 과거와 기록으로 아는 과거의 연결 방식을 구별한다
존 로크(1632–1704)는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로서, 인간의 지식이 경험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까지 확실할 수 있는지 탐구하며 자기 동일성의 근거를 의식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지금의 의식이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것으로 알아보는 범위에 인격의 동일성이 미친다고 보았으며, 이 문제를 몸이나 영혼이라는 실체가 계속 같은가 하는 문제와 구별했다.
“이것을 전제로 인격의 동일성이 무엇에 있는지 알아보려면 ‘인격’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격은 이성과 성찰 능력을 지닌 생각하는 지적 존재이며,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자신을 자기 자신, 곧 동일한 생각하는 존재로 여길 수 있다. 이는 사고와 분리될 수 없고, 내 생각에는 사고에 본질적인 의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누구든 자신이 지각하고 있음을 지각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숙고하거나 무엇을 의욕할 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안다. 현재의 감각과 지각에서는 언제나 이와 같으며, 이로써 각자는 자신에게 스스로 ‘자아’라고 부르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는 동일한 자아가 하나의 실체 안에서 지속되는지 여러 실체 안에서 지속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의식은 언제나 사고에 동반하고, 각자를 그가 자아라고 부르는 존재로 만들며 다른 모든 생각하는 존재와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 인격의 동일성, 곧 이성적 존재의 동일성은 오직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의식이 과거의 어떤 행위나 생각에까지 뻗어 갈 수 있는 만큼 그 인격의 동일성도 거기까지 미친다. 지금의 자아는 그때의 자아와 같으며, 현재 그 행위를 성찰하는 바로 그 자아가 과거에 그 행위를 했다.”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II, Chapter XXVII “Of Identity and Diversity,” §9.
“그러나 그것이 수적으로 동일한 실체인지라는 물음이 더 제기된다. 만일 이 지각들이 그 의식과 함께 언제나 정신에 현전하여 동일한 생각하는 존재가 항상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현전하고, 따라서 명백히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이를 의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만드는 듯한 것은 이 의식이 늘 망각에 의해 끊긴다는 사실이다. 우리 삶의 어느 순간에도 과거의 모든 행위를 한눈에 모두 앞에 두고 있지는 못하며, 가장 뛰어난 기억조차 한 부분을 바라보는 동안 다른 부분을 놓친다. 또 우리는 때로, 사실 삶의 대부분 동안 과거의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현재의 생각에 몰두하며, 깊은 잠에서는 생각이 전혀 없거나 적어도 깨어 있을 때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 의식이 끊기고 과거의 자신을 놓치기 때문에, 우리가 동일한 생각하는 존재, 곧 동일한 실체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문이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격의 동일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물음은 무엇이 동일한 인격을 만드는가이지, 같은 인격 안에서 언제나 생각하는 실체가 수적으로 동일한가가 아니며, 후자는 이 경우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서로 다른 실체들도 동일한 의식에 참여한다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될 수 있다. 서로 다른 물체들이 같은 생명에 의해 하나의 동물로 결합되고, 그 실체들의 변화 속에서도 하나의 지속되는 생명의 통일성에 의해 동일성이 보존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되도록 하는 것은 동일한 의식이므로, 인격의 동일성은 그 의식이 하나의 개별 실체에만 붙어 있든 여러 실체의 연속을 통해 이어지든 오직 의식에 달려 있다. 어떤 지적 존재가 과거의 행위에 대한 관념을, 처음 그 행위를 할 때 가졌던 것과 같은 의식으로, 또 현재의 행위에 대해 갖는 것과 같은 의식으로 되풀이할 수 있는 만큼 그는 동일한 인격적 자아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대해 갖는 의식에 의해 그는 현재 자기 자신에게 자아이며, 동일한 의식이 과거나 미래의 행위에 미치는 만큼 동일한 자아일 것이다. 그 사이에 시간이 벌어지거나 실체가 바뀌었다고 해서 두 인격이 되는 것은, 사람이 어제와 다른 옷을 입거나 그 사이 길거나 짧은 잠을 잤다고 두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실체들이 그 행위들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든, 동일한 의식이 그 멀리 떨어진 행위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하기 때문이다.”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II, Chapter XXVII, §10.
2. 아우구스티누스 — 기억하지 못한다는 현재의 경험도 자기 이해에 포함한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기억과 의지, 시간의 경험을 성찰하며 인간이 자신과 하나님을 어떻게 찾는지 탐구했다. 그는 자기 내면조차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살폈으며, 망각을 기억한다는 역설을 통해 기억의 힘과 불투명함을 함께 드러내려 했다.
“내가 ‘망각’이라고 말하면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면,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이름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가 뜻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내가 그 뜻을 잊었다면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기억을 기억할 때에는 기억 자체가 그 자체를 통해 현전한다. 그러나 내가 망각을 기억할 때에는 기억과 망각이 함께 현전한다. 하나는 내가 기억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기억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망각이란 기억의 결핍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망각이 현전할 때에는 기억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그것이 현전하여 내가 그것을 기억하게 되는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또 망각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이 뜻하는 것을 결코 알아볼 수 없을 것이므로, 망각은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망각은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도록 현전하지만, 그것이 현전하면 우리는 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망각을 기억할 때 망각 자체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을 통해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는가? 만일 망각 자체가 현전한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것을 끝까지 밝혀낼 수 있겠는가? 누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Augustinus, *Confessiones*, X.16.24.
3.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 기억의 확신과 정확성을 구별하고 사후 정보의 출처를 살핀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1944–)는 미국의 인지심리학자로서, 사건을 경험한 뒤 접한 정보가 기억 보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험하여 기억의 재구성 과정을 연구했다. 그는 진심으로 확신하는 기억에도 유도 질문이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섞일 수 있으므로, 기억의 생생함과 사실적 정확성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사건이 일어난 뒤 오도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흔히 그 영향에 휩쓸려 그 오도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보고한다. 이 현상은 ‘오정보 효과’로 알려져 있으며 반세기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는 그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이 기간 동안 과학자들이 이 현상의 어떤 측면을 탐구했는지 보고한다.”
Elizabeth F. Loftus, Emily S. Sutton, Aundia Dianat & Jessica P. Hoffmann, *The history of an idea: The misinformation effect*, Abstract, 첫 세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