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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Q011

나의 설명과 실제 행동이 어긋나는 이유를 어떻게 알아차릴까?

사람은 자신을 정직하고 배려 깊으며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 설명과 어긋날 수 있다.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편리한 소비를 반복하거나, 가족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면서 대화에서는 상대의 말을 끊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반드시 의도적인 거짓말에서 생기지 않는다. 자기 설명은 오랜 가치와 이상, 좋은 의도, 기억에 남은 행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실제 행동은 피로와 두려움, 이해관계, 시간 압박, 주변의 규범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과 실제로 반복하는 모습이 모두 ‘나’와 관련되기 때문에 어느 쪽을 기준으로 자기 이해를 구성할지가 문제가 된다. 어긋남은 여러 범주에서 나타난다. 직장에서는 공정한 관리자를 자처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직원의 실수를 더 너그럽게 볼 수 있고, 친밀한 관계에서는 솔직함을 중시하면서 갈등을 피하려고 중요한 사실을 숨길 수 있다. 경제적으로 검소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충동적으로 소비하거나, 타인을 돕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눈에 잘 띄는 도움만 선택할 수도 있다. 정치적·도덕적 신념이 강한 사람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반대로 겉으로 소극적인 행동이 능력 부족이나 무관심보다 안전을 위한 판단에서 나온 경우도 있어, 행동만으로 내면을 단정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의도는 직접 알지만 타인의 의도는 행동과 결과를 통해 추측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은 상황으로 설명하고 타인의 잘못은 성격으로 설명하기 쉽다. 기억 역시 자기 이미지와 잘 맞는 사례를 더 잘 떠올리게 하며, 반복되는 작은 행동보다 특별한 선행이나 실패를 중심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한다. 한편 타인은 결과를 경험하지만 내가 감당한 제약과 갈등을 모두 알지 못한다. 자기 보고, 행동 기록, 타인의 피드백, 실제 결과가 서로 다른 자료를 제공하며 어느 하나도 완전한 관찰점이 되지 못한다. 이 질문은 설명과 행동의 일치를 강요하는 데 앞서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한다. 자기 설명이 현재의 사실을 묘사하는지, 지향하는 가치를 밝히는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이미지를 유지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행동의 빈도와 맥락, 의도와 결과, 예외와 반복을 함께 볼 때 어긋남이 일시적인 상황 반응인지 지속적인 패턴인지도 달라진다. 나는 내가 말하는 사람인지, 반복해서 행동하는 사람인지, 그 둘 사이에서 계속 형성되는 사람인지 묻는 데 이 질문의 핵심이 있다.

1. 아리스토텔레스 — 원칙을 안다는 사실과 행동 순간에 그 앎을 사용하는 일을 구별한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좋은 삶이 어떤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앎·욕망·습관·품성이 어떻게 그 활동에 참여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사람이 옳은 원칙을 말할 수 있어도,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순간에는 그 원칙을 눈앞의 구체적 행동에 적용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행위에 관계하는 전제가 두 종류이므로, 사람이 두 전제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지식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을 막을 것은 없다. 보편적인 전제는 사용하면서 개별적인 전제는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해야 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들이다. 보편적인 것에도 차이가 있다. 하나는 행위자 자신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른 음식은 모든 사람에게 좋다’라는 전제가 있고, ‘나는 사람이다’ 또는 ‘이런 종류의 음식은 마른 음식이다’라는 전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음식이 바로 그런 종류의 음식이다’라는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거나 실제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여러 방식의 앎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한 방식으로 알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알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놀라운 일이 된다. 또한 사람은 지금 말한 것과 또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의미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나타난다. 잠든 사람, 미친 사람, 술에 취한 사람이 그렇다. 격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상태도 바로 이와 같다. 분노와 성적 욕망과 그 밖의 몇몇 격정은 실제로 몸의 상태까지 변화시키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광기에 가까운 상태를 일으킨다. 따라서 자제력을 잃은 사람도 잠든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과 비슷한 상태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식에서 나온 말을 한다는 사실은 아무 증거가 되지 않는다.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도 학문적 증명과 엠페도클레스의 구절을 읊을 수 있고, 이제 막 어떤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그 문구들을 이어 말할 수 있지만 아직 그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자기 것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지식의 말을 하는 것은 배우가 무대에서 대사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Aristotle, *Ἠθικὰ Νικομάχεια*, VII.3, 1147a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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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존 듀이 — 선언한 가치와 실제로 작동하는 습관의 차이를 환경 속에서 살핀다

존 듀이(1859–1952)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교육사상가로서,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말로 밝힌 결심도 이미 형성된 습관과 환경 속에서 작용하므로, 자기 이해에는 선언한 의도와 실제 행동을 만들어 내는 조건을 함께 조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모든 습관은 특정한 종류의 활동을 요구하며, 그것들이 자아를 이룬다. 이해할 수 있는 의미에서 습관은 의지다. 습관은 우리의 실제 욕구를 형성하고, 실제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또한 습관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여 어떤 생각이 나타나 강해지고 어떤 생각이 빛에서 어둠으로 사라질지를 결정한다.”

John Dewey, *Human Nature and Conduct*, Part I, Section II “Habits and Will.”

“우리는 습관을 의식적인 결심이 있을 때 꺼내 쓰기를 기다리는 도구 상자 속의 도구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은 그 이상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 적극적인 수단이며, 힘차고 지배적인 행동 방식이다. 우리는 재료와 도구, 그리고 엄밀한 의미의 수단을 구별해야 한다. 못과 널빤지는 엄밀히 말해 상자의 수단이 아니다. 상자를 만드는 재료일 뿐이다. 톱과 망치조차 실제로 무엇을 만드는 데 쓰일 때에만 수단이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도구, 곧 잠재적인 수단이다. 그것들은 어떤 구체적인 작업에서 눈과 팔과 손과 결합할 때에만 실제 수단이 된다. 마찬가지로 눈과 팔과 손도 실제로 작동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의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동할 때마다 외부의 재료와 에너지와 협력한다. 자기 바깥의 뒷받침이 없으면 눈은 멍하니 바라보고 손은 더듬거리며 움직인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일정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물들과 조직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만 수단이다. 이러한 조직이 습관이다.”

John Dewey, *Human Nature and Conduct*, Part I, Section II “Habits and Will,” 도구와 실제 수단을 구별하는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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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온 페스팅거 — 행동을 바꾸지 않고 설명만 바꾸어 모순을 줄이고 있는지 확인한다

레온 페스팅거(1919–1989)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로서, 사람의 믿음과 태도가 행동 및 사회적 정보와 어긋날 때 생기는 긴장과 그 긴장을 줄이는 과정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사람이 일관성을 회복하려 할 때 행동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맞추어 믿음을 바꾸거나 불편한 정보를 피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내가 제시하려는 기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조화의 존재는 심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부조화를 줄이고 조화를 이루려 하게 만든다. 둘째, 부조화가 존재할 때 사람은 그것을 줄이려 할 뿐 아니라, 부조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는 상황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피하려 한다.”

Leon Festinger,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Chapter 1 “An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Dissonance,” 두 기본 가설을 제시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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