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 Archive
WQ009

내가 원하는 것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까?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내부에서 완성된 채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이 칭찬한 진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물건, 광고가 제시하는 몸과 생활, 사회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지위가 무엇을 욕망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마음도 인간관계와 공동체 생활의 일부이므로, 사회적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욕망을 가짜라고 부르기 어렵다. 동시에 인정이 사라지면 흥미도 함께 사라지는 목표를 오래 추구할 때,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타인의 시선을 위해 원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문제가 된다. 욕망의 출처는 여러 영역에서 드러난다. 진로를 선택할 때 일의 내용보다 가족이 자랑스러워할 직함이 중요할 수 있고, 소비에서는 사용의 즐거움보다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표시가 작용할 수 있다. 몸을 가꾸는 활동은 건강과 감각적 만족,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 연애 시장의 평가가 섞여 있다. 결혼과 출산, 주택 소유 같은 생애 계획도 개인의 바람과 정상적인 삶에 대한 압력이 구분되기 어렵다. 정치적·종교적 활동에서도 신념에 대한 헌신과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창작자는 표현의 필요와 관객의 반응을 동시에 의식한다. 타인의 인정은 욕망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기도 한다. 존경하는 사람을 따라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깊은 관심이 될 수 있고, 공동체의 기대를 통해 책임과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 반대로 혼자 있을 때에도 계속하고 싶은 활동이 반드시 자신의 참된 욕망이라는 보장도 없다. 습관, 두려움, 과거의 결핍이 타인의 시선 없이도 욕망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시간이 흐르며 바뀌고, 처음의 동기와 현재의 이유가 다를 수 있다. 순수한 개인 욕망과 사회적 욕망을 완전히 분리하는 기준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질문은 어느 욕망을 선택해야 하는지 결론내리기 전에 욕망이 형성되는 관계와 보상의 구조를 이해하게 한다. 그 목표를 상상할 때 실제 활동과 결과 중 무엇에 끌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해도 관심이 남는지,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감정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욕망이 어떤 집단의 기준을 반영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질문의 초점은 나의 욕망 속에서 즐거움·소속·불안·비교·가치가 어떤 비중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사회적 영향을 모두 제거한 자아를 상정하기는 어렵다.

1. 애덤 스미스 — 칭찬받고 싶은 마음과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구별한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스코틀랜드의 도덕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서, 사람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신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하려 했다. 그는 실제로 칭찬을 얻으려는 욕망과,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칭찬받을 만한 존재가 되려는 욕망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지는 않다고 보았다.

“인간은 본래 사랑받기를 바랄 뿐 아니라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사랑의 자연스럽고 적절한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는 미움받기를 두려워할 뿐 아니라 미움받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다시 말해 미움의 자연스럽고 적절한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칭찬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을 만함을 원한다. 아무도 자신을 칭찬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칭찬의 대상이 될 만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비난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을 만함을 두려워한다.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칭찬받을 만함에 대한 사랑은 결코 전적으로 칭찬에 대한 사랑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원리는 서로 닮아 있고 연결되어 있으며 자주 뒤섞이지만, 여러 점에서 서로 구별되고 독립되어 있다.”

Adam Smith,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Part III, Chapter II, 첫 두 문단.

원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

2. 孔子 — 남에게 알려지려는 마음보다 실제로 무엇을 배우고 갖추려는지 살핀다

孔子(기원전 552/551?~479)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예와 배움을 통해 사람의 성품과 관계를 바로 세우고 무너진 정치적·도덕적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그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는가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이 실제로 덕과 능력을 갖추고 배운 바를 실천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보았다.

“孔子가 말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라.’”

『論語』 「憲問」 14.30 — 子曰:「不患人之不己知,患其不能也。」

“孔子가 말했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만한 바탕을 걱정하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기를 구하라.’”

『論語』 「里仁」 4.14 — 子曰:「不患無位,患所以立;不患莫己知,求為可知也。」

“孔子가 말했다. ‘옛날의 학자는 자신을 위해 배웠고, 오늘날의 학자는 남을 위해 배운다.’”

『論語』 「憲問」 14.24 — 子曰:「古之學者為己,今之學者為人。」

원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

3. 르네 지라르 — 원하는 대상과 그 대상을 원하게 만든 모델을 함께 살핀다

르네 지라르(1923–2015)는 프랑스 출신의 문학비평가이자 사상가로서, 소설 속 모방과 경쟁을 분석하여 인간의 욕망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밝히려 했다. 그는 사람이 어떤 대상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을 때에도, 그 대상을 가치 있게 보이게 만든 매개자의 욕망과 존재 방식을 따를 수 있다고 보았다.

“매개자의 위신은 욕망의 대상에 옮겨져 그 대상에 환상적 가치를 부여한다. 삼각형의 욕망은 대상을 변형시키는 욕망이다.”

René Girard,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 제1장; Yvonne Freccero 옮김, *Deceit, Desire, and the Novel* (1965), Chapter I “Triangular Desire,” p. 17.

원문 확인

↑ 질문으로 돌아가기